1989년에 처음 인도를 여행하면서 시작된 인연이지만, 우연찮게 읽은 한 소설을 통해 구원의 땅으로 인도를 꿈꾸기 시작했던 중학교 시절부터 따진다면, 필자의 인도와의 인연은 짧다고 할 수는 없다.

먹고 싶은 것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라는 무시할 수 없는 명제를 무기 삼던 무리들에 의해 기본적 자유와 평등이 무참히 짓밟히며 좌절과 굴욕으로 훼손된 내면의 비명들이 횡행하던 70년대. 그 70년대를 피가 끓는 20대에 통과해야 했던 것은 어떻게 해도 지워질 수 없는 인생의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 좌절 때문에 인도를 향한 꿈이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30대 후반이었던 89년, 약속의 땅이었던 미국, 그 선망 받던 나라에서 나름 정착되어가던 삶을 내동댕이치고 단숨에 인도로 향했다. 그만큼 인도는 나에게 구원에 가까운 곳이었다.

인도와의 만남, 축복인가?

그렇게 만난 인도, ‘충격이었다.’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단순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필자가 가깝게 목격한 지난 30년 동안의 인도는 우리가 7,80년대에 겪었던 변화가 무색할 정도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 처음 인도를 방문하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대부분이 토로하는(소위 말하는) 문화적 충격의 강도가 89년에 필자가 느낀 충격보다 약한 것 같지는 않다. 인도의 계획처럼 인도가 문화, 정치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손색없는 선진국의 일원이 되는 20년 후에 인도를 방문하는 사람도 같은 강도의 문화적 충격을 느낄 가능성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인도를 찾는 사람이 줄기는커녕 늘어만 가는 이유 중에는 버거울 정도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충격을 이기고 인도와 만나는 사람에게 “인도는 축복이다.”라고 말하고 실증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이유뿐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도 좌절과 굴욕으로 점철된 필자의 내면이 열리어 치유되도록 인도가 나에게 어떤 답을 주거나, 해준 일은 단언컨대 없었다.그토록 갈구했던 구원의 신을 보여주거나 일러주거나 그런 구원의 신에게 이르는 방도를 보여주거나 일러주는 스승을 인도가 안내해준 것도(적어도 필자에겐)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도와의 만남은 (인도를 찬양하는)수많은 세계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필자에게도 축복이었다.

왜 지금 우리에게 인도인가?

인도인들 누구나가 그 깊이와 다양함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인도의 문화가 세계의 문화에 차지하는 몫이 만만치 않다. 제3세계 개념을 정립했던 과거는 물론 중국을 견제할 최고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인도가 세계의 정치계에서 차지하는 몫도 그러하다. 인도의 정치, 문화가 세계에 차지하는 몫에 대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젊은층이 80%에 육박하는 12억 인구의 개발도상국 인도가 세계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몫, 그 가치와 중요도 또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000년 대 초반에야 인도에 진출한 한국이 훨씬 일찍부터 발을 들여놓은 후 직, 간접의 경제적 관계를 향유하던 일본을 불과 몇 년 만에 제치고, 일본과 인도의 교역량보다 더 많은 교역량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한국 특유의 저돌성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를 염두에 둔 경제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한국이지만, 일본의 반격으로 촉발되는 또 다른 전쟁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 최근 천황의 인도 방문을 실현시킨 일본이 금년 1월 한국 대통령의 방문 직후에 일본 총리의 인도 국빈 방문을 실현시키며 최대한의 정치, 경제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경쟁에서 비교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 때문이다.

왜 문화교류를 해야 하는가?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거의 전 세계를 관통하며 동남아 일대는 물론 중동 지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 인도에선 북동부 일부 지역에서의 작은 바람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쉬운 현상을 지켜본다. 어떻게 해야 인도와의 문화 교류가 촉발되어, 한국, 인도 사이의 정치, 경제 교류를 뒷받침할 수 있겠는가를 나름으로 고심하던 차였다.

그런데 광주광역시가 추진하는 아시아 문화전당의 콘텐츠를 채우기 위해 광주의 민간단체인 대동문화재단 측이 인도의 문화 단체들과 교류를 트고 싶으니, 주선해줄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들어왔다. 고소원일지언정 불감청 격인 제의가 아닐 수 없었다.

필자가 인도 전역을 거지와 진배없는 방랑자로 떠돌던 90년도에 일본의 TV 드라마가 인도 전국에 방영되며(차관 제공의 조건으로 일본 측이 자기네 드라마의 전국 방영을 요구했을 것으로 짐작됨) ‘긍정적인 일본’, ‘의지의 일본인’이라는 이미지를 인도인들에게 심었던 것을 기억하는 까닭에 한류 드라마의 인도 방영 시도가 번번이 막히거나 무산되는 게 안타까웠고, 정부나 관련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들이 아쉬웠던 것이다. 그런데 민간 차원에서나마 문화 단체끼리의 실제적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도울 수 있는 기회가 고맙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뉴델리와 자이뿌르에서 만난 인도

기대되었던 광주시 담당 공무원의 합류는 여러 이유로 무산되었지만,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와 함께 인도와의 교류 길에 나선 두 분 - 나주의 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죽설헌을 만들어낸 것으로도 기억될 문인화가인 박태후 선생,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규모의 광주예총회관을 건립해낸 엄청난 추진력과 돌파력의 전남대학교 미대교수이자 조각가인 최규철 광주 예총회장이 인도 방문의 문화 충격에 동참할 분들이었다.

광주 문화계를 대표하기에 손색없는 일당백의 이 세 인사들이 인도에서 만난 단체들은, 준비 기간이 짧았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나름 다양했다. 처음 만난 뉴델리의 두 단체는 국영 단체였다.

현대 인도의 철혈 여제상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여사를 기념하며 활동하는 국영단체 인디라 간디 재단(Indira Gandhi Foundation) 산하의 아트 센터와 세계적인 수준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뉴델리 국립박물관 등 두 국영 단체 모두 광주시의 아시아 문화센터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양국의 교류를 통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문화 창달을 도모하는 기회들을 만들기로 다짐했다.

엄청난 규모의 이 두 국립기관들과는 국가적 규모의 행사까지도 추진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오랜 준비 기간과 그에 상응하는 큰 주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델리 최고의 문화 클럽인 인디아 국제 센터(India International Centre)로 초청하여 만난 두 민간 단체장 -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문화유산에 속하는 인도 유산 중의 하나인 가면극 차우(Chhau)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샤샤다르 아차르야(Shashadhar Acharya)씨, 각종 전통 악기, 성악 및 무용을 500 여 명의 수강생들에게 전승시키고 있는 인도 최대, 최고의 예술 교육 기관 중의 하나인 갠다르바 마하비달라야(Gandharva Mahavidyalaya)를 이끌고 있는 마덥 무드갈(Madup Mudgal) 씨와의 만남은 보다 더 밀착적이었다.

본인이 리더가 되어 공연하는 공연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적이 있는 아차르야씨처럼 무드갈씨도 교육 기관의 수장일 뿐 아니라 인정 받는 인도의 중견 성악가로서, 한국은 아직 방문 전이지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들, 유럽과 미주 및 남미 등 제자들과 함께 전 세계 대상의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있는 공연자이기 때문이었다.

한-인도 교류, 그래! 문화로 고리를….

대동문화재단과 교류를 위한 업무 제휴를 체결하며 교류를 희망한 단체는 위의 두 단체 외에도 인도의 대표적 관광 도시인 자이뿌르에서 만난 국제 까딱 춤‧음악 연구소(India International Institute of Kathak Dance & Music)도 있다.

이 연구소를 이끄는 스웨타 스와티(Shweta Shwati)여사는 교섭 처음부터 우리 일행이 반드시 자신의 연구소를 방문할 것을 요청했었는데, 일정 지연으로 약속보다 3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일행을 차분히 기다렸다가, 문하생들에게 까딱 춤의 일부를 시연토록 하는 등 손님을 맞는 인도인들의 전통적인 심성을 보여줌으로써, 숨겨져 있는 인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도 수행했다.

10여 년 전에 문하생과 함께한 어려웠던 인도 여행 기억이 생생한 최규철 회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여러 면에서 인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며 고마워하셨고, 오랫동안 그려왔던 인도 여행이었다며 기꺼워하셨던 박태후 선생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인도 여행을 다짐 또 다짐하셨고, 짐작만 했던 인도의 실체를 직간접으로 경험하게 된 조상열 대표도 인도와의 교류가 가질 중요성에 대해 재삼재사 실감한다며 더 열심히 광주-인도 간 민간단체 교류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하셨으니, 세 분의 인도와의 이번 만남이 축복이라고까지 표현될 수 있겠다.

서로 다른 세 분 모두 각기의 모습으로 축복 맞을 준비를 갖추게 된 인도 여행이었던 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 각기의 분야에서 제 각각으로 만나며 향유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축복을 미루거나 망설일 일은 없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포용의 오아시스

서로 다른 것을 포용(때로는 인내)함으로써 피어나는 다양함이 만드는 넓이와 깊이를 보여주는 인도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한국인들(또는 세계인들)이 여유와 공간을 느끼는 것은, 쫓기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 (소위 말하는 선진) 문명 세계의 구조 속에서 질식되어가는 현대 선진도시의 영혼이 가난하게 되어버린 현실 때문일 것이다.

빠른 결단과 진행이 성공의 핵심 관건처럼 되어 있는 현실에 충실하며 그 나름의 결과물들을 창출해내는 한국의 문화 풍토와 다양함을 용인하며 기다려내는 인도의 문화 풍토가 교류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문화가 있다면, 그 문화는 미래 사회의 대안이 되는 문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서둘러 더 열심히 인도와 교류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정창권 인도 전문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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