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호젓하게 걸어도 절대 외롭지 않다. 오히려 떼를 지어 걷다가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고독만큼 함께하기 좋은 동반자는 본 적이 없다.”고 소로는 말한다. 실제로 어떤 장소에서는 홀로 걸으면서 대로변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인파에 둘러싸인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숨결의 무게가 느껴지는 호젓하면서도 훈훈한 존재감이다. 고독하면서도 가득한 느낌이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 다비드 르 브르통>

붓다의 길을 따라 인도 네팔을 간다. 가면 다시 돌아와야 하고, 돌아오면 다시 가야하는 것이 인생의 길, 반원의 길이다. 바라나시, 보드가야, 라즈기르, 나란다, 파트나, 바이샬리, 쿠시나가르, 쉬라바스티, 품비니, 포카라, 카트만두를 따라 다시 내 안으로 돌아온다. 그 길은 길 끝에 길이 있고, 길 밖에 길이 있고, 길이 시작되는 곳에 다시 길이 있는 영원한 뫼비우스의 띠이다. 우리 인생의 길이 그렇다.

그곳은 물론 몸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몸만으로는 다 만지고 볼 수 없는 길이다. 마음으로 가야하는 길이면서, 마음이 닳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길이다. 그래서 그곳은 공(空)의 공간이다.

그곳은 물론 사람의 길이다. 사람이 다니고, 소가 다니고, 뭇 생명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숭고한 가난, 사유의 사치, 더운 입김의 정치, 세월의 흔적이, 순교자의 발걸음이 더께더께 놓인 길이다. 길 위에 길이 있고, 길 아래, 길 안에, 길 밖에 길이 또 있음을 고요히 보여주고 있는 길이다.

강은 땅의 모든 더러움을 걸러 바다로 내버리는 청소부다. 그래서 강물은 청소부의 빗자루다. 강물은 모든 것을 쓸어 담아 바다로 가지만 자신은 순결청정하다. 그래서 성스럽다. 성스러운 강에 시체를 담은 배를 띄우고 산화(散花) 공덕을 빌 때, 성스러운 이생과 피안이 한 물줄기로 흘러간다. 그것은 시공이 짓물러 무화된 무(無)의 때이다. 무시(無時)의 영역이다.

결국 인디아는 공(空)의 공간과 무(無)의 시간으로 자기를 존재 증명한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시간의 구분도 없다. 아무것도 없고, 시간도 해체되어버린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다시 색(色)의 공간과 유(有)의 시간이 다시 태어나는 곳이다.

‘계시록’과 같은 공간이다. 박해와 환난을 위로하고 희망을 예비하는 상징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고통스러워도 웃는다. 그때 고통과 환난은 영원한 복락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오호라! 화엄경은 그래서 이렇게 불인두로 길과 강에 새긴 현세의 말씀으로 남아 생생한 것이리라. 거기는 죽음도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생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곳이다. 오로지 이생의 그 가난과 고통과 열정마저도 내생의 파안으로 가는 즐거움과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도취되는 곳이다. 오호라! 색즉시공 공즉시색….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존재하고,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비어 있는 이 역설의 미(美)를 알아챈 깨달음의 전율, 그리고 그 찰나의 법열(法悅)을 작가 리일천은 그렇듯 생생한 명암과 아름다운 채색으로 캐냈다. 강물 위에 실루엣으로 떠오른 ‘소녀의 기도’는 꽃으로 환하고, ‘신의 계단’에 놓인 이 진부하고 가난한 삶의 일상이 그래서 성스러운 풍경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길과 강물과 숲과 시장과 골목길과 담벼락에 들어와 문득 그대는 아름다움이 무엇이며, 공과 색의 경계가 무너진 경지가 어떤 것인지를 예지처럼 깨달는다. 당신이 마음으로 다가갈 때 이 길은 당신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 길을 걷다가 보면 당신이 당신의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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