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

다음의 글은 이태수 서울대명예교수가 2016년 1월 15일 무등파크호텔에서 가진 광주경영자총협회의 금요조찬회 특강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제가 상상력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꽤 오래 됐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상상력보다는 어느 정도 대비되는 이성의 구조가 관심사이다. 이성의 구조를 공부하면서 상상력과의 접경지대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상상력이 관심을 끌게 된 사소한 계기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친구가 엉뚱한 질문을 나에게 했다. 고도성장의 시기가 지나고 현재의 성장이 계속 될 것인가, 성장 이후 인류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물었다.

후속국가들도 고성장을 하고 전 인류가 지금 같은 속도로 계속 개발 성장한다면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고 인류가 더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다. 인류의 지속성장 가능성에 대해 철학교수인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할 수 없다.

반대로 지금까지 성장한 인류의 과거를 되짚었다. 과거 인류의 성장을 이끌었던 힘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했더니 결국 ‘상상력’이었다. 앞으로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인류의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의 성공 스토리는 문명사의 전개에서 나타난다. 인간의 진화 여정은 매우 독특하다. 인간의 진화 여정 속에서 지금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종 하나만 남아있다. 생물의 진화전략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략은 종 다양화이다.

그런데 인간은 위태롭게 종 하나만 남아있다. 한 대는 흑인, 백인이 다른 종인 중 알았더니 현대과학 연구 결과 한 조상으로부터 비롯된 같은 종이었다. 호모 속(屬, genus)은 진화 과정 중 원숭이로부터 유인원과 분리되어 약 600만년 전에 출현했다. 당시 분리된 참핀지와 인간의 DNA가 99%가 일치한다.

인간 생존은 언어 의사소통을 통한 결속

호모 속의 여러 종(種, species) 가운데 400만년 전의 homo habilis를 찾아냈다. 그 뜻은 재능 있는 호모이다. 이는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안다는 뜻이다. 또 더 발달된 북경원인이라고 말하는 homo erectus가 있다. 다음으로 우리 인간과 외형적, 머릿속이 가장 가까운 homo neanderthalensis이다. 성교가 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homo sapiens가 우리 인류이다.

우리 DNA의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연구 대상으로 또 다른 인간종류로 homo rudolfensis, homo rhodesiensis가 있다. 20세기 들어 발견된 homo floresiensis, homo denisova 등은 인간과 이종교배가 가능했던 종인데 이들은 모두 멸종했다.

인류의 진화 전략은 지나치게 뇌에 투자했다. 너무나 비실용적이다. 생존을 위해 싸움을 해야 하는 데 머리 개발에 힘쓴 것이다. 큰 뇌의 불리함은 신체적 부담과 직립보행을 하게 되어 허리디스크에 영향을 주고 출산의 문제, 과도한 에너지 소비 등등을 들 수 있다.

다른 포유류는 출산 직후 1시간여만 지나면 걸어 다니고 풀을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인간은 아이를 낳으면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지키고 키워야 한다. 더욱이 뇌 때문에 고영양가를 먹는 문제이다. 뇌의 부피는 신체의 평균 2% 무게인데 에너지는 20%를 소비한다.

이런 점 때문에 homo sapiens가 킬러 노릇을 하기 전에 많은 종이 성공 못하고 멸종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을 쉽게 설명하는 최재천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지구상 생물 역사에 기록을 남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 생존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생물의 평균 생존기간은 2백만이다. 이 정도 되어도 생물사의 기록이 어렵다.

homo sapiens는 아무리 많이 잡아야 20만년 이하이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무리 지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진화전략 때문에 인간은 실패작이지만 끊임없이 지능을 발달시키고 있다. homo sapiens는 여러 도구를 사용했는데 가장 내구성이 큰 석기를 보면 돌을 깎거나 갈아서 사용했다. 타제, 마제 석기이다.중요한 것은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먹이를 사냥하는 데 필요한 소통이지만 집단 형성의 촉진에 기여했다. 즉 사람을 평가하고 분리하며 집단결속이 힘이 되었다.

인류학자인 던바(R. Dunbar)의 이론에 따르면 스킨십과 말 나누기라고 했다. 말 나누기의 집단은 100명 단위라고 했다. 이 정도 수준이 친지 수준이고 능숙한 사람은 150명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집단의 크기와 가십은 100명 단위가 던바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도구를 쓰는 인류가 100명이 모이면 집단이 버틸 수 있다. 사자의 천적이 하이에나이다. 하이에나 한 마리는 사자의 적이 못되지만 무리를 이루니 상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이 돌도끼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또 고기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먹이사슬의 중하위권에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맹수들이 고기를 다 먹고 남은 뼈다귀에서 그 안의 골수를 먹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문화와 문명의 등장

도구를 만들고 뾰족하게 만들고 자루를 붙여서 인간이 자연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100명 단위로 무리를 이루어 돌도끼를 만들어 사용하며 살았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은 7만년 전 인지(認知)혁명이 이루어졌다. 이대부터 목걸이가 등장한다. 생존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목걸이나 그림 등이 등장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먹고 사는 일도 바쁜데 목걸이를 걸만한 여유가 있을까.

호모사피엔스 이후 빙하기가 왔기 때문에 우리는 추위에 강하게 견딘다. 이것은 허구를 창조해내는 상상력의 발휘, 즉 전두엽(前頭葉, frontal lobe)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들이 쓰던 언어가 지금 남아있지는 않지만 남은 유물로 추측해보면 던바의 수를 넘어선 단계로 나아가 의사소통 범위와 집단규모의 획기적 확대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집단을 100명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인간은 이때부터 엄청난 속도로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회복불능으로 만들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이다. 4만5천년 전 호주 대륙에 처음으로 호모사피엔스가 들어왔다. 당시엔 캥거루 등 50여종의 생물이 있었다. 인류가 호주로 들어가면서 캥거루만 살아남았다.

아메리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 종이 들어가면서 검치나 맘모스 등이 멸종됐다. 역사가 시작하기 몇 만년 전에 먹이 사슬의 최상위를 점거하는 시기에 이른다. 인간이 집단 크기를 늘려가면서 1만년전 농업혁명과 함께 등장한다.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는 정착 거주지를 형성하고 확대했다. 이때 생산담당과 지배계급이 등장한다.

계급질서의 고착화와 집단간의 투쟁도 나타났다. 이는 옆의 정착지에 대한 식량을 뺏어오는 활동을 늘린다. 이때부터 자연세계의 경쟁자가 아니라 인간간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먹이를 위해 다른 생명체를 살상했다.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인간종을 상대로 살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네안네르탈인을 멸종시켰을 주범일 수 있다. 정복과 합병을 통해 공동체 규모가 일층 더 증대된다.

이때 인지혁명 때 시작했던 사람을 결속시키는 언어활동이 활발해졌다. 신화와 영웅설화, 종교와 이념, 의식(儀式) 등을 만들었다. 큰 집단을 결속시키기 위한 생물학적인 전략의 연장이다.

“사자는 우리 부족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존재다” 또는 “곰이 우리의 조상이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규모 집단이 결속한다. 이는 실제가 아니라 상상력을 토대로 한 허구이다. 전래신화는 상상력의 소산이다. 이렇게 하면 배달민족은 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타 집단과 경쟁 관계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상상력의 도움으로 마련된 이야기가 역사와 문화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인구증가에 따라 정착지의 규모가 동시에 증대되면서 전쟁이 심해지고 합병이 되면서 거대국가, 제국의 출현으로 민족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이념이 싹튼다. 이게 제국의 기반이다. 기독교가 로마제국과 연결된 것은 로마가 여러 문화권을 통합한 거대 문명제국으로 기 기반을 기독교가 만들었다.

문화(culture)와 문명(civilization)의 구별은 문화는 특정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특수성을 가능한 한 보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문명은 문화권의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주의적 확장 경향이 강하다. 문명권의 형성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에서 최초 문명권이 형성되면서 인류의 역사시대가 개막되었다. 이들 문명권의 큰 특징은 큰 하천 유역에서 성립한 거대 고대국가이다.

상상력은 지성적 모험의 기원

서양문명의 모태인 고대그리스 문명의 특성은 문명이 이루어질 수 없는 특성이다. 자연적 여건의 특수성(영토 크기, 토지 생산력, 해양활동의 가능성)으로 보면 후발주자이다. 그러나 해외교역을 통한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식민지 건설을 했다.

서양에서 이들을 이어받아 성장한 배경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성적 모험 덕분이다. 이것이 상상력이다. 신화나 종교만이 아닌 영역까지 상상력을 통한 본격적 탐사를 시작했다. 자연철학적 탐구로서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우주는 어떤 모양일까?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추상적인 수학적 탐구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원이다. 이는 측량술이다. 그리스어 명칭 geometria 또는 geometrike이다. 어원에서 드러나듯이 이집트의 측량술이 전신(前身)으로 이집트에서 수입한 기술이다. 그리스의 현실에 강도 없고 새롭게 구획할 땅도 없기 때문에 적용이 어려운 비실용적이다. 그래서 땅이 아니라 머릿속에 상상을 통한 유클리드 공간을 창조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특징은 연역 증명 체계로 정의, 공리, 정리, 추론적 증명을 요구한다. 비실용적 확장의 대표적인 예를 보면 정리 20을 보면 삼각형에서 임의의 두 변의 합은 나머지 한 변보다 크다. 공리 5에서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2직각(180˚)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는 것이다.

무한에 대한 사색, 제논의 역리 등은 우주선을 쏴 올릴 수 있는 서양문명의 군림을 가능하게 한 토대가 되었다. 이는 과학 기술의 힘이 되었는데 자연관찰과 실험을 통해 상상력의 힘이 된 것이다.

당장의 실용에만 집착하면 상상력을 통한 지성의 모험은 불필요한 낭비로 보인다. 그리스인들이 머릿속에 무한의 공간을 상상했을 때 농사를 짓고 측량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필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게 하는 동력이다. 그러나 필요는 문화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며, 문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지성의 모험이 과학기술을 비롯한 모든 학문, 예술분야에서 창조의 전제조건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상상력이 활용된 것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타 문화를 지배하는 데에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상상력은 무엇이 될까? 제국 형성에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공생과 자연과 인류의 조화까지 겨냥해야 한다. 이러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지성적 모험을 통해 우리의 정신 지평을 넓히는 방향으로 발휘될 것이다. 그 방향을 시야에 담아 둘 수 있어야 세계의 무대에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예향의 도시에서 문화적인 상상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광주는 발전할 것이고 국가도 발전할 것이다.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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