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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유령 6 | 승인 2016.07.11 16:23

4. 16. 08:59-10:11

 

살고 싶어요……를 지나는 시간입니다

수학여행 큰일 났어요 나 울 것 같아요를,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를 지나갑니다

걱정돼요, 한 명도 빠짐없이, 아멘……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실제상황이야 아기까지 있어 미치겠다가

가만히 있으세요 절대 이동하지 말고가, 기다리세요가 사라졌습니다

기울어지고 기울어지고 기울어지고가 지나갑니다

잠깁니다 잠기고 있습니다 잠깁니다

무섭습니다 무섭습니다 무섭습니다

이제 없어, 가자고가 가버립니다

오지 않았습니다 들어오지 않습니다 쳐다보며,

안 보았습니다 우리는 여기, 없습니다

마지막 기념을 엄마 보고 싶어요를, 사랑해

사랑해, 나가서 만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내 동생 어떡하지? 아직 못 본 애니가 많은데,

난 꿈이 있는데,

내 구명조끼 네가 입어가 우릴 놓아버리고

끝났어 끝난 것 같아가 끝납니다 사라집니다

검은 물이 옵니다 물 샐 틈 없는 물이 왔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끝났습니까……

 

 

4. 16. 11:18-

 

아니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아니요…… 죽임이 나타났습니다 사선 뒤의 사선이 나타났습니다

뉴스가 꺼지고,

카톡이 안 되는 시간입니다

스마트폰이 숨 거둔 시간입니다

기다려라 기다려나 봐라 기다려버려라, 없어진

우리는 천천히 오그라듭니다

고통이 너무 많이 천천히, 천천히 옵니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죽임이 옵니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죽임이 만집니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죽임이 알아봅니다

우리는 다급히…… 죽음을 모릅니다

헤어지지 않습니다, 버려졌으니까 네 손과 내 손을

묶습니다 정말 없어질지도 몰라, 입 맞춥니다

젖은 몸을 안습니다 젖었으니까 안습니다 웁니다

그칩니다 웁니다 어둡습니다

무섭습니다

미끄러지고 뒹굴고 떨어지고 부딪히고 처박힙니다

떱니다

찢어지고 흘립니다 움켜쥐고 끊어지고 긁습니다

부러집니다 꺾입니다 그리고……

어둡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숨을 안 쉽니다

우리는 너무 자꾸 피에 젖습니다

모면하고 모면하고 모면합니다 실낱같이

가혹해집니다 희미하게 희미하게, 살아집니다

고통이 너무 많이 번개처럼 옵니다

고통이 너무 많이 번개처럼 웁니다

살고 싶어요를……죽고 싶어요를 눌러 죽이는 시간입니다

아픕니다 아팠습니다 아팠던 것 같습니다

아프고 있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까……

 

 

4. 17-

 

아니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끝없는 끝이 왔습니다 죽임 뒤의 큰 죽임이 왔습니다

아니요…… 끝나고 싶습니다 뭉개지고 부서지고 흩날리고 싶습니다

다른 것이 돼버리고 있습니다

흐르지 않는 이 시간의 급소와 통점은 무엇입니까

숨결을 갈가리 뜯어먹는 이 캄캄한 짐승의 엄니는 무엇입니까

어느 하느님의 적들이 보냈습니까

어느 사랑의 원수들이 길길이 풀어놓았습니까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왔습니까

이것이 왔는데, 왜 아무도 오지 않습니까

내가 왜 이것에게, 있습니까 나는

칼을 숨 쉬었습니다 나는, 몸이 벌렸습니다 나는

물에 끓고 있습니다 암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암전 뒤의 암전은 무엇입니까

암전 뒤의 암전 뒤의 이 암전들은 또 무엇입니까

물이 비명을 잡아먹은 시간입니다 신음이

뽑혀나간 시간입니다 내 숨은 어디로 사라집니까

숨 막힘은 어디로 가라앉았습니까

이, 저며지는 시간의 꽃잎들은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없습니다 물이 우리를 씹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까맣게 물에 탔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천천히 우리를 먹는 것입니다

나이기가 어렵습니다 나일 수 없습니다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싶습니다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힘이 없습니다

다른 것이 되고 있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이제 정말, 다 끝났습니까

 

 

4. 18-

 

아니요……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아니요……몸이라는 헛것을, 헛것을 빼앗겼을 뿐입니다

우리는 왜 이유가 없습니까

이유란 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우리 몸에서 쫓겨났습니까 터져나왔습니까

봄꽃이 봄에 피는 것 같은 대답은 어디 있습니까

가을에 가을 잎이 지는 것 같은 이유는 어디 있습니까

이 외롭고 무서운 삶은 무엇입니까 죽었는데,

우리는 왜 말을 합니까

난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날 닮은 이,

조용한 아이는 누굽니까 손톱이 빠졌습니다

친구들도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똑같이 생긴

이 아이들은 누굽니까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말을 안 합니다 엄마, 아빠, 나는 누구세요?

우리는 도대체 누구세요?

죽었는데, 우리는 왜 자꾸 말을 합니까?

이, 이상한 형체를 보아주세요

이, 불가능한 몸을 만져주세요

타오르는 진짜들을 느껴주세요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는 것이고 말았습니다

고통을 모르는 고통입니다

오직 삶이라는 것만을 아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나타날 수 없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4. 20-

 

아니요, 나타납니다…… 나타나고 나타나고 나타납니다

아니요…… 떠는 손과 무너진 몸, 찢어지는 가슴들에 젖고 있습니다

아니요…… 구조 없는 구조를, 그저 귀찮고 귀찮고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들을,

썩은 돈다발을,

통곡과 능멸의 항구를 떠다닙니다

행진을 가로막는 도심의 장벽을 봅니다

슬픔을 내려치는 칼 위에 앉아 있습니다

우는 누나와 굶는 아빠와 얻어맞는 엄마를 안고 있습니다

망각이 되자고 날뛰는 기억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속에서 기억합니다, 무사하지 말아요

슬픔을 비웃는 얼굴들을, 기쁜 슬픔들을 보고 있습니다

어떤…… 거짓을 보고 있습니다

악마라 부를 거예요

교통사고야 조류독감이야 미개한 국민이야를

물속에서 듣습니다 아무도 무사하지 말아요 놓아주지 않아요

몰려옵니다 유가족이 벼슬이야가 이제 그만이

사방에서 습격해옵니다, 말해주세요 물의 철벽에 허공의 콘크리트 속에

말을 넣어주세요, 피 속엔 피를 흘려 넣어주세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떠나보낸 겁니까…… 악마의 뱃속에서 기어나갈 거예요

땅 끝까지 기쁜 악마들을 추적하는 아우성이 될 거예요

안을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몸이지만 나타날

힘이란 없지만, 나타나기 직전의 발버둥으로

허공인 두 손으로, 그대들을 움켜쥡니다

허공인 두 발로 그대들에게 매달리고 있습니다 긁습니다

허공으로, 그대들에게 엎드려 빌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오지 않은 겁니까…… 우린 죽지 않았습니다 그대들은

살지 않았습니다

수학여행, 가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그대들은 살아요

그대들이 살아야 우리는 죽어요, 어서

죽여주세요, 어서 우리를

말해주세요 살려줄게요, 말해주세요

살려줄게요…… 살려드릴게요

 

 

0. 00. 00:00

 

초록 바다 수평선 너머 먼 곳에 수학여행 가야 해요

수학여행, 가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보내주세요

 

아니, 아니……돌아가야 해요

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

인사 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으로,

끝내 와주지 않던 그, 나라라는 곳으로 가야 해요

무엇보다, 숨어 우는 엄마에게로

숨 죽여 울어야 하는 아빠에게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오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유령 6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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