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마을 입구나 동네 곳곳에 '누구네 아들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걸리곤 했다. 요즘은 '누구네 아들 9급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현수막으로 바뀌곤 한다.

또 실제로 그럴 일이 광주에서 벌어질 것 같다. 40대의 현직 변호사가 지난달 광주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일반 행정 9급에 응시했기 때문이다.

12일 광주시에 따르면 로스쿨 출신 40대인 A 변호사가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에게 주는 가산점을 신청하면서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고 밝혔다.

광주시 인사규칙은 6급 이하 일반행정직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는 필수 3과목과 선택 2과목에서 과목별 만점의 5%에 해당하는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103명을 선발하는 이번 임용시험에는 모두 8천85명이 지원, 5천9명이 실제 시험을 치렀다. 실질 경쟁률은 48.6대 1이었다.

광주시는 이번 시험에 응시한 A변호사의 자격증 소지 여부 확인을 변호사협회에 요청해 최근 소속 변호사라는 회신을 받았다. 변호사 자격은 있지만 생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차라리 주민등본을 떼주며 적은 봉급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이 A 변호사는 지난해에도 7급 임용시험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9급 공무원 시험에 지원한 사례가 있었을까 싶다. 이런 사태까지는 예견하지는 못했지만 엄청나게 양산된 사법시험 출신들도 판검사를 못하면 변호사를 해야 하지만 일거리를 제대로 맡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쪽 팔에 가방 들고 동네 골목을 다니면서 호객행위를 할 것이라는 우스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지난해만 해도 자치단체 6~7급 법무 관련 직위에 변호사를 공모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9급 일반행정직까지 넘어다본다면 이들 법조인 양성에 쓰인 사회적 비용이 낭비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정책이 잘못된 결과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지방직 9급에 임용되면 동사무소에서 등·초본 등 제증명 업무부터 맡게 된다. 이런 일이 하찮은 것은 아니지만 변호사 출신이 주민등본을 떼주고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체면'은 전혀 생각조차 못할 지경이 됐다.

9급 공무원은 더는 '말단'이 아닌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직종이 된 것인가. 다시 말해 철밥통의 새로운 좌표인지도 모르겠다.

몇년 전 국립대 경영학과에서 전공과목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수강생은 60여명 쯤 됐는데 절반 정도가 공무원 시험 공부에 매진하느라 수업은 뒷전이었다. 그들에게는 전공과목은 대충 학점을 따고 공무원 시험만 합격하면 된다는 생각인 것처럼 보여 서글펐다.

48.6대 1, 이렇게 경쟁률이 높다 보니 합격자들의 스펙도 당연히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 필기시험 점수가 높아도 가산점 없이는 합격을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바늘구멍'이 됐다. 몇 년 전에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미화원에 응시해 포대를 들고 달리기 테스트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이런 현상은 도전적인 창업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는 사회구조가 되면서 빚어진 현상의 하나이다. 적성이나 창의성, 역량보다는 점수로 사람을 평가하는 평가사회의 종말이 다가올 것 같다.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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