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칸 국제영화제는 터키의 누리 빌게 세일란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 주었다. 바로 <윈터 슬립>이다. 따지고 보면 칸 영화제가 세일란 감독을 각별하게 챙긴다는 인상을 주기는 했다. <우작>(2003)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2011)가 영화제의 2등상 격인 심사위원상을 연거푸 수상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위선과 이기심을 사유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칸 영화제가 누리 빌게 세일란을 챙기는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윈터 슬립>은 칸의 총애에 답하는 영화다.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를 안톤 체홉의 두 편의 단편소설에서 추출한다. 바로 <뛰어난 사람들>(1896)과 <아내>(1896)가 그 소설들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이야기를 21세기 터키의 이야기로 전이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공간의 간격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이 영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인간의 위선과 이기심을 사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이딘(할룩 빌기너)은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의 카파도키아에서 아담한 호텔(호텔 이름이 ‘오셀로’인 것도 의미심장하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호텔에서 젊은 부인 니할(멜리사 소젠)과 여동생 네즐라(드맷 앳백)와 함께 살고 있다.

이렇듯 감독은 세 인물이 한 집에서 함께 살도록 한 셈인데, 체홉의 두 소설에서 문학평론가와 여동생, 건축가와 아내의 이야기를 한 공간 속 세 인물로 녹여낸 것이다. 세일란은 체홉이 즐겨 다루는, 인간 상호간의 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을, 아이딘과 니할 그리고 네즐라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펼쳐 보이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3시간 16분에 이르는 이 영화에서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의미는 각별하다. 세일란 감독이 직접 주조해낸 이 대화의 내용은, 각 인물들의 입을 통해 격렬한 논쟁으로 화해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

바로 이 대목이 <윈터 슬립>이 한 편의 연극을 영화로 관람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삶의 본질을 꿰뚫어 내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대사들이,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긴장을 고조시키며 그 힘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영화인 것이다.

이렇게 세 사람의 대화가 지배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들의 언쟁을 듣고 있으면 인간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독설을 퍼붓고, 상대방을 질책하는 것으로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고 한다.

여기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인간들은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딘도 그런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지역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며 세태를 개탄하기도 하고, ‘터키 연극의 역사’에 대해서 저술을 계획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여동생의 눈에 비쳐진 아이딘은, 이기적이고 냉소적이며 고통 받지 않으려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인물로 인식된다.

인간의 위선과 이기심을 사유하다

여기에다 마을 인근의 땅과 집의 소유주이기도 한 그는, 딱한 사정이 있는 세입자들에게 너그럽지 못한 마음 씀씀이로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는 부자에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지만 스스로를 뒤돌아보지 않고, 타인들의 삶에는 무관심한 인물인 것이다.

아내인 니할은 이러한 아이딘과의 생활에 숨막혀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다는 심정을 단호하게 피력한다. 니할은 아이딘을 증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인 아이딘을 미워하는 니할 역시 위선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는 집세를 내지 못해 난처한 상황인 이스마일 가족을 찾아간다. 그녀의 손에는 큰 액수의 기부금이 들려 있다. 그녀는 이 돈을 빈자들에게 안겨줌으로서 남편에 비해 도덕적인 우위에 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녀는 가난한 자의 마지막 품위를 지켜주고자 했겠지만 타인의 자존심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돈을 불태워버리는 이스마일의 태도다. 그는 상대방의 선의를 무참하게 짓밟으며 사나운 자존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과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니할은 물론 관객들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이렇듯 <윈터 슬립>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응시한다.

인간성에 대한 집요한 탐색전

인간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고 싶으나 잘되지 않는다. 각자가 자라온 환경과 처해진 상황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 사이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며 흘러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마무리에서 누리 빌게 세일란은, 아내 곁을 떠났던 아이딘이 어떤 일말의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 일상에 복무하는 것을 비쳐준다. 아이딘이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쉽지 않겠지만 주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단독자가 아니다. 관계적 존재로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누리 빌게 세일란은, 이 평범한 진리를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며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탐구를 마무리한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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