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가장 한국적인 영화의 한 장면을 꼽는다면 몇 년 전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는 <워낭소리>다. 소를 가족처럼 여기는 노인의 일상과 소에 대한 농민의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 이 영화는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이중섭 화가의 그림 중에서도 소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나타내는 가장 완벽한 소재였다. 예로부터 소는 단순한 가축의 수준을 넘어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백성들의 재산이요,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귀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제 소는 농사를 거드는 노동력보다는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존재가 되었고 농민과 상인이 만나 우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소의 역할도 변하고 있지만 소가 농민에게 큰 재산이라는 측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전남 최고 거래량 함평우시장

쌀이 귀하던 시절 일반 농작물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아 생활이 어려운 백성들에게 소는 큰 재산이 되었다. 농촌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너른 벌판에 나가 꼴을 베어 소를 먹이고 추수가 끝난 농가에서는 볏짚과 콩대 같은 부산물을 가지고 쇠죽을 쓰느라 초가집 굴뚝에 연기가 가득 올라 마을을 덮은 것도 어릴적 우리네 고향 풍경이었다.

옛날부터 소시장은 전국어디에나 형성되었다. 우리네 민속장인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은 먼 길을 마다않고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장터 한 곳에 넓은 공간은 으레 소시장이 형성되었고 이른 새벽부터 소 값을 흥정하느라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야말로 난장이 되었다.

주변에는 소의 부산물로 우려낸 국밥집들이 포장을 치고 소를 거래한 사람들은 장터에 앉아 걸죽한 탁배기 한 사발에 시름을 달래던 그때 그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안 밖이다.

함평 우시장은 남도에서는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지금이야 곳곳에 축산농가가 많아 기업형으로 소를 기르는 곳이 생기면서 우시장의 역할이 많이 위축되어있지만 한 시절 전국의 소 값을 평정했을 정도로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 진 곳이 함평우시장이었다. 함평에서 유명하다는 육회 비빔밥도 우시장 덕분에 탄생했다.

전주비빔밥이 세련되게 완성된 궁중요리로 평가된다면 함평 육회비빔밥은 소박하지만 어머니가 집에서 비벼주는 듯 정다운 시골스런 밥이다. 함평 읍내에 우시장이 공식화 된 것은 한국전쟁 이전의 일. 시장이 서면 몰려드는 비빔밥 장사들이 소시장에서 나오는 싱싱한 육회를 고명으로 올리기 시작한 것이 함평 육회 비빔밥의 시작이다. 함평장터를 끼고 있는 식당들에서 유명세를 더하는 육회비빔밥만이 함평우시장의 지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값비싼 송아지를 거래한 독천우시장

독천은 미암, 삼호, 서호 3개 면의 접경지로 강진, 해남, 목포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영산강 하구둑을 막기 전에는 세발낙지, 어란 등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독천장에는 조선 중종 때 우시장을 만들어야 마을이 평화로울 것이라는 귀인의 말에 따라 우시장이 형성되고 나서 장이 들어섰다. 한때 하루 100~200마리의 소가 거래됐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조선시대 영암읍에 경주 이씨들이 살고 있었다. 고려 후기 대문장 익재(益齋) 이제현(1287~1367)의 후손인 이주남이 조상의 묏자리를 잡으려고 유명한 지관(地官)을 모셨다. 지관이 영암 월출산(月出山) 상봉에 올라가 보니 저 멀리 있는 산에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뻗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관은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비래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비래산 허리에 여자의 생식기 모양인 여근혈 명당이 보였다. 여근혈로 내려가 명당으로 부족한 점이 없는지 두루 살펴보니 100m 정도 아래 샘까지 있는 천하 명당이었다. 지관이 이주남에게 여근혈 명당자리를 알려 주자 이주남은 길일을 택해 조상의 묘를 그곳으로 옮겼다.

조상 묘를 잘 써서인지 이주남의 동생이 1672년(현종 13)에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宣傳官) 벼슬을 하였고, 경주 이씨 자손들도 날로 번창하였다. 경주 이씨에게 두루 조상의 음덕이 미치자, 한편에서는 근친상간 사건이 자주 일어나 가문에 누를 끼치는 일이 많았다. 문중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명한 지관을 다시 모셨다.

지관은 여근혈 묏자리가 명당이기는 하나 음기가 너무 성하여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하며, 산 밑 하천에 우시장을 만들면 남자들이 모여들어 양기가 발산될 것이니 음기를 중화시킬 수 있다고 조언하였다.

지관이 말한 대로 하천에 우시장을 세우자 그 후부터 이씨 문중에 우환이 생기지 않았다. 우시장이 생긴 후에 ‘송아지 독(犢)’자와 ‘내 천(川)’ 자를 써서 지명을 독천(犢川)으로 바꾸었다. 그래서일까. 독천우시장은 최고 품질의 송아지가 거래되어 전국에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죽전골목이 있는 영산포 우시장

“전남 나주군 영산포 지방은 군내 시장으로서 1,2위를 다툴 뿐 아니라 축산물로도 대성황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축산시장이 없으므로 일반은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여 오던 바 얼마 전부터 읍 당국에서는 현 시장부근에 1천 여 평을 부설하야 이를 축산시장으로써 증량키로 하고 오는 20일부터 축산시장을 개시한다는 바, 그에 대한 준비에 매우 분망 중이라 하며 개장일부터 25일간은 시장사용료를 면세하기로 되었다 한다” 1938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는 영산포 축산시장의 개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죽전골목이라 불리는 영산포시장은 ‘죽파는 집’들이 많았다. 영산포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시장의 도시였다. 현재는 터미널 옆의 풍물시장 정도로 협소하지만 옛날의 영산포시장은 도시 전체가 시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교동(영산포초등학교 옆) 우시장에서 시작된 시장은 언덕너머 본영동에서 절정을 이루었는데, 영산대교 아래로 싸전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각양각색의 점포들이 줄지어 선 본전통이 형성되었다. 영산포는 주변에 산이 없어서 땔감이 부족해 나뭇짐을 끌고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오포대 싸이렌이 울리면 죽전으로 나와 죽을 사먹는 광경이 이색적이었을 정도로 죽전은 영산포의 명물이었다.

영산포역이 있어서 전국 각지의 우량품종의 소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이곳까지 올 정도로 성시를 이루었다. 홍어로 유명한 영산포에는 소고기 대신 홍어음식점이 이곳의 주류를 이루지만 나주와 영산포가 합병된 금성시에서는 ‘나주곰탕’이 서민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사라져간 우시장 골목마다 한우고기 식당만 명맥 이어져

조선시대에는 소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법으로 금했으며 큰제사가 있을 때에나 고기로 먹게 했다. 임금이 직접 농사시범을 보이고 소를 잡아 탕을 끓여 관리와 백성들이 함께 먹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설농탕이 등장한 배경이다.

우시장 탐방에 나서보니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전국에 이름 난 우시장이 지역마다 있었고, 그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민가에 잘 알려진 소고기 요릿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가령, 수원의 왕갈비나 마포 주먹구이, 태백의 연탄구이, 울릉도 약소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지역에 대대로 내려왔던 우시장을 찾아내는 것은 의외로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함평한우비빔밥, 송정 떡갈비, 독천 갈낙탕, 창평국밥, 나주곰탕은 우리지역에서 제법 오래전부터 전해진 소고기 요리였고, 소고기 식문화는 그 지역 어디든 규모가 큰 우시장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지금의 우시장은 옛 명성만큼 활발하지 않다. 하지만 축산농가의 증가로 지역별로 현대식 축산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각 지자체 마다 자체적인 브랜드를 내세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흥 삼합(소고기, 표고버섯, 키조개)이 유명세를 떨치는 것도 장흥의 축산농가의 집약적인 발전에 힘입은 소고기 판매 전략이 성공한 까닭이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정지승 프리랜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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