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병신년 한 해가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노을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느 해인들 순탄했으랴마는 2016년은 특히 시련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저마다 희망을 품고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가슴속 회한과 함께 쫓으며 쫓기며 지나온 세월의 퇴적물들이 더께더께 쌓여 어느새 한해의 끄트머리에 와 있습니다.

금년에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사건들도 있었지만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사고들도 많았습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의 ‘여선생님 집단 성폭행 사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흉기를 휘두른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부모에 의해 저질러진 ‘아동 학대사건’, 비정규직 ‘젊은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공의 죽음’과 그 청춘의 가방에서 발견된 컵라면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연말에 불어닥친 조류독감(AI)은 축산농가는 물론이며 서민들의 삶에도 깊은 주름살을 남기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계에서는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시대착오적 시도가 있었으며, 문학계 일부 인사들의 불미스러운 ‘제자 성추행 스캔들’이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올봄에 발표한 소설가 한강의 맨 부커상 수상 소식은 한국문학의 자부심을 심어준 쾌거였습니다.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에서는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여소야대의 정국이 만들어져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국민들의 민의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준 일대의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역사교과서 파동, 개성공단 폐쇄, 고고도 미사일 방위체계(사드) 배치 등, 남북관계도 전쟁 운운할 정도로 일촉즉발 위기를 겪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 올해의 가장 큰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彈劾)입니다. 연말이면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걷는 겨울의 낭만을 온데간데없이 실종시키고 말았습니다. 온 사회를 집단 우울증에 걸려 있는 듯 얼어붙게 만들고, 모든 이슈들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습니다.

몇 달째 도시를 뒤덮고 있는 수백만 개의 촛불과 함성들, 도대체 국민들은 왜 차가운 거리에서 함성을 질러야 하는지, 불통과 독선의 리더십과 한 지도자의 몽매(蒙昧)함에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이제는 스스로 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지성들의 요람인 전국 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연합회, 국공립대학교 교수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교수 3 단체가 그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주간지 ‘교수신문’이 있습니다. 2001년부터 연말이 되면 그해를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강물(백성)이 화가 나면 배(임금)를 뒤집을 수 있다’는 의미의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습니다.

‘군주민수’는 순자(苟子)의 ‘왕제(王制)’ 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원문은 ‘君者舟也 庶人者水也(군자주야 서인자수야).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군이차사위 즉위장언이부지의)’로 풀이하면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를 변화시키고 전진시키는 첫 발은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촛불을 나눠 밝히려는 권리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며 “민주공화국의 세상에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도 슬픈 백성도 없다”며 교수들의 추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어느 교수는 “2500년 앞서 이렇게 ‘주권재민’의 원리를 이야기한 순자(苟子)에게 소름 끼치는 경외감을 느낀다”라고 말했으며 “박근혜 정권의 행로와 결말은 유신정권의 역사적 성격과 한계를 계승하려는 욕심의 필연적 산물”이라고도 했습니다.

역사의 격동기 굽이굽이에는 늘 백성들이 있었고 백성들이 만든 길은 여지없이 역사가 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어둡고도 추운 혼돈의 2016년 병신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를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아야 할 때입니다.

타인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독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이기심으로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았는지, 조그만 권력으로 ‘갑질’을 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해 봐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슬펐던 일, 괴로웠던 일 모두 모두 날려 보내고, 새로운 ‘희망가’를 불러야 할 때입니다. 내일의 태양은 어김없이 찬란하게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아듀! 2016

임영열 시민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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