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아의 어머니’ 윤학자(1912∼1968, 일본명 다우치 치즈코) 여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인의 고아들에 대한 필생을 바친 사랑을 기리는 기념식이 준비되고 있다. 3000여 명의 고아의 생명을 구해낸 윤 여사는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사도로 알려지고 있다. 올 10월 31일은 여사가 태어난 지 100돌이 되는 날이다.

한국 사회복지법인 ‘숭실 공생복지 재단’(이사장 박종순)과 일본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이사장 윤기)이 공동으로 발족시킨 ‘윤학자 여사 탄신 100주년 기념 사업회’(대표 김수한 전 국회의장)는 지난 5월 10일 서울에서 발기인 대회를 연데 이어 5월 23일 오전 도쿄 뉴오타니 호텔에서 일본쪽 발기인 대회를 열어 10월에 있을 기념행사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추진키로

윤 여사의 생일인 10월 31일을 전후해 다양한 행사를 연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31일 목포 시민문화회관 체육센터에서 일본인 3000여명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윤학자 여사 탄신 100주년 기념식과 ‘UN World Orphans Day’(유엔 세계 고아의 날) 제정 추진 대회를 연다. 고아 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국제사회에 고아 발생 예방과 그들의 안전과 교육, 복지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또 서울 대방동 여성 플라자에서 윤 여사와 공생원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사랑의 묵시록’ 2탄 제작을 위한 한일 영화인 교류 모임을 연다. 30일 목포 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한·일 사랑과 평화의 제전’(전야제)이 열린다. 31일 목포 공생원에선 윤학자 여사 100주년기념관이 개관된다.

윤 여사가 태어난 일본 고치시에서도 11월 9일 100주년 기념식과 부조상 제막식이 열린다. 서점가에는 ‘어머니는 바보야’, ‘김치와 우메보시’ 등 책자와 ‘사랑의 묵시록’ 영화 DVD, 기념지 등이 나와 있다. 기념 사업회는 ‘나도 고아였다’란 주제로 수기 공모전과 책자 발간, 기념우표를 발행할 예정이다

영혼들의 등불이 되다, 공생원

공생원은 1928년, 고아의 대부인 윤치호 전도사가 설립한 사회복지 시설이다. 윤치호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 다우치 치즈코(윤학자) 여사와 결혼했고, 이후 두 사람은 평생을 바쳐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했다.

윤치호와 윤학자의 외손녀이자 현 공생원 원장 정애라 씨는 “조부모님은 약한 자의 편에 서서 본능적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며 “그 분의 숭고한 삶을 생각할 때마다 ‘헌신’이란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윤치호는 1909년 파평 윤씨 증손으로 유학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집안은 소작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 빈농이었다. 그는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열네 살 되던 해에는 아버지마저 과로로 사망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 가장이 됐다.

하루하루가 힘겨웠던 그에게 희망을 준 것은 미국인 여선교사 줄리아 마틴(jullia martin)이었다. 마틴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울 피어선 고등 성경학원을 졸업했고, 목포로 내려와 전도 활동을 하다가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아들을 보고 그들을 위한 공생원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유산>에는 윤치호가 고아들을 보며 강한 구제의 사명을 느끼게 된 시대적 배경이 서술되어있다.

“목포시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급격히 늘어나는 빈민층에 대한 것이었다. 무허가 초막들은 이미 유달산 기슭까지 점령한 상태였다. 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목포 인근의 도서나 농촌에 있던 서민 계층이 대거 유입돼 문제가 커진 것이다. 이들 중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자식을 버리기까지 했다. 버리는 장소는 목포역이나 부두 등지였다. 갓난아이는 포단에 싸서 버렸고, 조금 큰 아이는 마대에 넣어서 유기했다. 부랑아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쓰레기를 줍고, 폐품을 팔고, 동냥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아들을 책임지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자로서 무거운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이다.

거지 대장과 함께한 고아와 거지의 어머니

또한 일본 시코쿠지방 고치현에서 태어난 다우치 지즈코는 조선총독부 하급 관리로 목포에 온 부친을 따라 일본에서 건너와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목포의 선교사들이 세운 정명여학교의 음악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당시 공생원을 운영하던 전도사 윤치호 씨를 만나 38년 결혼한다.

그의 나이 26살, 청혼을 한 것은 다우치였다. 남편 윤씨가 19살이 되던 18년에 설립한 공생원은 7명의 원생으로 시작했다. 당시 그의 별명은 ‘거지 대장’이었다. 결혼과 함께 이름도 윤학자로 바꾼 다우치는 일제 강점기 후반 온갖 편견을 인내하며 남편의 사업을 도왔다.

윤 여사는 남편이 6·25전쟁 중 행방불명이 되자 남편의 뜻을 이어 1968년 작고할 때까지 3천여 명에 이르는 고아를 길러냈다. 고아들과 거지들의 어머니로 추앙받았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1967년에는 일본 정부에서 남수훈장을 각각 받았다.

윤 여사가 작고하자 목포시는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윤 여사가 태어난 일본 고치(高知) 현에서는 추모비를 세웠다. 지금도 목포 등지에는 공생원 산하 9개 시설에 450여 명의 어린이와 장애인 등이 보살핌 속에 생활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은 1928년 목포 공생원 창립 이후 고아원, 중증장애인 요양원, 재활원 등을 통해 사회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한편 소년소녀 직업훈련원과 한남 직업전문학교 등 교육기관을 설립해 5만 명 이상의 산업 기술자를 육성해 왔다. 일본에서는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을 설립하고, 재일동포 고령자를 위한 양로원 ‘고향의 집’을 사카이, 고베, 쿄토에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다. 숭실대학교와 공생복지재단은 지난 2008년 10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하나가 됐다.

숭실 박종순 이사장은 “윤 여사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은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 귀감이 된다”며 “그 고귀한 뜻을 오늘에 되살려 적극적으로 계승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동문화72호 [2012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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