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통기타가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처럼 한 발짝 건너뛰면 노래방이 즐비한 시절도 아니고 휴대폰을 이용, 시도 때도 없이 음원을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시설 좋은 강의실에서 USB만 꽂으면 원하는 대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있던 시절도 아니다.

담양에 설치된 김정호 노래비

70년대 80년대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길거리마다 젊은이들이 북적거렸다. 정부에서 장발을 단속하거나 통행금지 시간을 정하여 제재를 가하는 시절이어서 젊음을 맘껏 터트리며 혈기왕성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도 부족한 그들이었다. 그들의 꿈은 소박한 것이어서 때론 통기타 하나 덜렁 메고 가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서울로 가는 젊은이도 많았다.

한국 청년문화 한 부분을 차지한 1인 김정호

유동, 북동, 누문동은 김정호의 탯자리

젊은 나이에 요절한 가수 김정호(본명 조용호)는 1952년 광주 북동에서 태어나 광주 수창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을 마치고 서울 교동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김정호가 처음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대동상고 시절이었고 스물한 살이 되던 1973년 ‘이름모를 소녀’를 불러 가수로 데뷔한다. 요즘 말하는 386세대나 7080세대들은 그를 기억한다. 대한민국 통기타, 포크의 산실이었던 명동 쉘브르 1세대 김정호, 그리고 청바지, 생맥주 등 당시엔 그것이 낭만이고 젊음이었다.

새로운 한국 청년 문화 한 부분을 선도한 사람 중 1인, 지병인 폐결핵 때문에 늘 창백한 표정과 애조 띤 목소리로 시를 읊조리듯 때론 절규하듯 내지르던 비운의 포크 가수, 1970년대 ~ 80년대를 불태운 포크계의 레전드 김정호다.

그는 ‘이름 모를 소녀’를 발표한 후 가요계의 샛별로 떠올랐고 요절할 때까지 ‘저 별과 달을’ ‘하얀 나비’ ‘날이 갈수록’ 등등 수많은 노랠 히트 치고 그 당시 큰 인기를 누린 보컬 어니언스(임창제. 이수영 듀엣)의 ‘작은새’, ‘편지’ 투에이스(금과 은)가 불러 히트한 ‘빗속을 둘이서’ 등등 그 당시 유명 가수들이 히트 시킨 서정성 짙은 불멸의 곡들이 김정호의 오선지에서 탄생한다.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싱어송 라이터, 프랑스에 조루즈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같은 음유 시인 가수가 있다면 한국엔 김정호가 있다고 음악계에서도 인정했던 가수다. 가을가수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이란 노래는 당시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앉았다 하면 불러졌던 노래로 잘 기억할 것이다.

하얀나비

김정호의 음악성은 외가의 영향이 컸다. 남도 서편제의 한 계보를 보면,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법통이 몇몇 사람을 거치며 전라남도 담양의 박동실에게 이어지는데 조선 후기 이후 현대 판소리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명창 박동실이 바로 김정호의 외할아버지다. 박동실은 인간문화재 김동준, 명창 김소희, 박송희 등을 길러낸 명인이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의 외할아버지가 북한으로 간 후 외가는 몰락위기에 몰렸고 그 무렵 어머니는 광주 북동에 거주하던 지역 유지와 결혼하여 김정호를 낳게 된다. 그러나 정실부인이 아니었던 탓에 김정호를 두고 담양의 친정으로 가버린다. 이런 영향으로 어린 시절 남모를 설움이 응어리지는 상처로 남아 마음에 자리 잡는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의 성장기는 노래에 영향을 미처 또 하나의 단면으로 나타난다.

대구엔 김광석, 광주엔 김정호 거리

대구 방천시장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이 있다. 지난 2009년 쇠락한 전통시장이었던 방천시장을 문화와의 접목을 통한 상권 활성화를 위해 대구 중구의 ‘별의별 별시장’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 후 문화체육관광부 2010년 ‘문전성시사업’에 이 시장이 선정되어 방천둑 옹벽 350여 미터에 고(故)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조성했다. 이 거리는 스토리 벽화, 조형물, 음향시설 등 80여점의 다양한 작품을 설치하여 전통시장과 예술이 함께하는 특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길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품과 김광석 길 전역에 잔잔하게 흐르는 서정적인 노래는 김광석의 향수를 다시 불러 일으켜 도심 속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이 거리에서 김광석을 기리는 김광석 노래부르기 대회, 김광석 탄생 50주년 추모 콘서트, 김광석을 추모하는 거리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와 버스킹 공연 등이 개최되었다. 또 마을기업 ‘청춘아트팩토리’, 사회적기업, 거리에서 협동조합, 청연 등 문화와 예술이 결합한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나면서 대구를 대표하는 브랜드파워로 핵심 관광명소가 됐다.

김정호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김광석은 자살을 했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이승을 떠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남긴 가요계의 업적은 실로 무게가 있었다. 김광석은 김정호와 비슷한 나이에 많은 노래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김광석을 좋아했던 팬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운 사건이었다. 아쉬워하는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그들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사업들이 펼쳐졌는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의 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쇠퇴한 시장을 활성화하고 김광석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보답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심정으로 계획된 거리였지만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광주에도 김정호의 거리가 있다. 김정호가 다녔던 수창초등학교 후문에서 북동 천주교로 이어지는 뒷길이다. 아직 대구의 김광석 거리만큼 활성화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궁동 예술의 거리에서 대인동 구도심을 통과하여 김정호 거리로 이어지는 문화벨트 형성에 많은 기대를 갖는다.

김정호가 탄생한 생가도 그 거리 중간쯤에 위치한다. 김정호를 느끼는 완전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아 사람들이 아직 많이 찾지는 않지만 하나 둘 생겨나는 노랫말벽화를 비롯하여 서서히 김정호의 히트곡이 흘러나올 준비를 마쳤다.

지난 2013년 조성이 시작된 김정호 거리는 생활공예공방 등 거리에 어울리는 상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담장엔 김정호의 히트곡이 벽화로 그려지고 있다. 버스킹이 활발하게 이뤄져 통기타 소리가 울려퍼지고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생동감 넘치는 거리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해당 관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김정호 생가, 다락방 아트센터가 대신하고 있다

담양에 우뚝 선 김정호 노래비

전남 담양은 김정호의 외가다. 김정호가 아버지의 집이 있는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음악적 바탕은 담양으로부터 생성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담양 소리꾼의 상징인 명창, 박동실이라는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소리의 맥을 이어온 국악인 어머니, 국악계 또 하나의 아쟁 명인인 외삼촌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가식구 전체에 타고 난 끼가 김정호의 몸, 피, 정신 속에 들어있다. 애절한 성질의 서편제에 물든 가족들의 피와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그의 노래 감성이 형성 되었던 듯하다. 김정호의 작품은 대부분 애절하고 어둡고 음울한 색깔을 담고 있다.

지난 2014년, 그의 외가가 있는 담양에 김정호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담양가로수 군민연대가 추진한 노래비다. 당시 이 비를 건립하기 위해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하남석, 이필원, 백순진, 임창제, 홍민, 채은옥, 소리새 등 추억의 가수들이 참여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에 세워진 이 노래비는 가로수 길을 찾는 많은 인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긴팔 재킷을 걸치고 벤치에 앉아 통기타를 치는 그의 모습은 틀림없이 살아 숨 쉬는 김정호다. 그의 입에선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을..’이라고 금방이라도 뱉어 낼 듯 한 태세다.

광주의 김정호 거리는 지지부진하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가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성공한 모델이라면 광주의 김정호 거리는 문화수도 예향의 힘으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즉, 문화적인 시민의 강력한 의지와 소신이 바탕이 되어 거리조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체나 추진단체의 처분만 바라며 기다리다간 세월만 간다. 물론 지자체도 예향의 고장답게 문화의 계승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7080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통기타, 청바지 세대들은 김정호의 음성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김정호 거리가 활성화되고 김정호의 흔적을 순간순간마다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조성되면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몰려 올 것으로 기대한다.

김정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거리조성이 하루빨리 활성화 됐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다.

이름모를 소녀

<대동문화 102호. 2017년 9월 - 10월>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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