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뫼마을은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에 자리한 지극히 평범한 동네다. 입구부터 눈을 요란하게 하는 벽화도 미각을 자극하는 맛집도, 커피향 가득한 카페도, 편히 쉴 수 있는 공원도 없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느긋하게’ 나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남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달뫼마을에서 내려다 본 광주시내 풍경

달과 산을 품고 있는 달뫼 마을. 오늘도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의 산책이 조심스럽지만 그리운 반가움에 첫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달뫼마을은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산처럼 생겼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산의 능선과도 같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겹겹이 쌓인 모습은 산 속 빼곡히 심어진 나무들을 연상케 한다.

도시 속에서 TV예능 ‘런닝맨’을 찍으라면 이곳이 제격! 폭 1m 남짓도 안 되는 길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달뫼마을은 그야 말로 전국에서 손꼽을 수 있는 최고의 숨바꼭질 장소다. 이곳을 찾기 전 명심해야 할 한 가지! 그것은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예의를 갖추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왼쪽으로 가면 단무가 주렁주렁

한 때 흔하디 흔하던 풍경이 보기드믄 풍경, 담벼락 단무 건조

첫걸음을 월산동 마을센터에서 시작해보자. 마을센터로 쭉 뻗어있는 길의 끝자락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어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행여 길을 잃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도 당황해하지 말고 가던 길을 찬찬히 다시 걸어보자.

걷기에 바빠 놓쳐버린 골목 사이에 핀 꽃들의 인사와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고양이의 눈길에 답을 해보는 것도 이 마을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은 기운찬 모습으로 가득하다. 마을센터에서 왼쪽으로 꺾으니 한창 유행했던 벽화 몇 점들과 큰 담장을 따라 일광욕을 즐기는 단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의미 없는 벽화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단무들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삭한 단무지가 되기 위해 자신을 햇볕에 내놓는 모습이 얼마나 훌륭한지! 무들의 멋진 자태에 마음이 뺏겨 연신 셔터를 눌러대니, 그 모습이 신기해 보였던지 보일러에 기름을 담고 있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그걸 뭐할라고 찍는다요? 재밌소?”

향수를 자극하는 벽화

오른쪽으로 가면 복슬복슬 백구

할머니의 물음에 웃음으로 대신 대답하고 다시 마을센터로 돌아와 이번엔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굽어진 골목들을 기웃거리기를 한참, 인기리에 방영중인 ‘응답하라 1988’보다 더 오래된 세월을 간직한 듯한 ‘수원지수퍼’가 나타났다.

‘수원지(水源地)’는 물이 흘러나오는 근원이라는 뜻이다. 높은 지대에 있는 달뫼마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산꼭대기에 위치한 수원지로 물을 끌어올렸다가 수원지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자연 유입되도록 설치한 수리시설이다.

슈퍼 옆에는 커다란 백구가 마침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낯선 이가 지나가도 짖기는커녕 발을 동동 구르며 꼬리를 연신 흔들며 반기는 모습에 반해 슈퍼로 들어가 간식을 사오지 않을 수가 없다. 백구는 ‘수원지수퍼’ 1등 영업사원임에 틀림없다. 슈퍼의 안주인께서 백구를 쓰다듬으며 말하시길,

“이쁘제? 아까도 누가 차에서 우리 백구 찍어 갔어~” 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작지만 웬만한 물품은 다 있는 ‘수원지수퍼’. 건너편엔 작은 정자와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생활운동기구들이 있어 달뫼마을의 휴휴당(休休堂, 쉬고 또 쉬는 집)같은 곳이다.

달과 산이 빚어낸 보물

수원지가 있었음을 짐작케하는 수원지 수퍼

수퍼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무등산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심 전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돈을 내지 않아도, 차를 타고 오지 않아도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쉽게 즐길 수 있으니 데이트 코스로도 만점인 곳이 이 달뫼마을이다.

아침 10시에 시작한 산책길이 어느덧 정오에 다다랐다. 집집마다 피어나는 구수한 밥내가 코와 배를 자극한다. 냄새만 맡아도 어떤 반찬이 점심상에 오를지 알 수 있다. 이 집은 진한 된장찌개, 저 집은 노릇하게 구워진 굴비, 건넛집은 계란후라이. 어릴 적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이 떠올랐다.

추억놀이를 그만하라고 배가 연신 신호를 보낸 뒤에야 산책의 끝이 왔음을 깨달았다. 마을 입구에서 뒤를 돌아 마을을 다시 훑어보았다. 곳곳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리라. 달뫼마을에서 가졌던 여유로웠던 추억도, 애틋한 기분도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고 싶다. 할머니가 어린 나의 커가는 모습을 변함없이 지켜보듯.
[대동문화 92호. 2016년 1,2월호]

박소연 기자  lylic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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