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 _ 담양 가사문학관 소장

조선의 양대 문학은 시조와 가사다. 이 두 가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만든 사람이 면양 송순(1493-1582)이다. 가사에서는 호남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이며, 담양을 근거로 누정문학을 꽃피웠다. 누정문학을 이야기할 때 담양이 뜨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한다.

면앙정 _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면앙정로 382-11

향수 89세를 산 면앙정은 눌재 박상(1474-1530)의 문하에서 핀 청출어람의 꽃이다. 면앙정의 문하 인사로는 하서 김인후(1510-1560), 고봉 기대승(1527-1572), 제봉 고경명(1533-1592), 송강 정철(1536-1593), 백호 임제(1567-1608)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다.

일찍이 과거(26세)에 급제하여 정계에 진출한 면앙은 음률에도 밝아 가야금을 잘 탔고 풍류를 아는 재상이었다. 송순은 면앙 이외에도 기촌(企村), 신평(新平) 등의 호가 있다.

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기(致仕)까지 60여 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세 번의 사화가 있었지만 단 한 번의 귀양살이에 그칠 정도로 관운이 좋았다.

면앙정단가

그만큼 군자다운 인품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면앙정의 정자에 시인묵객이 끊임없이 오고간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면앙정을 소재로 한 시가만도 600여수, 국문학 가사도 20여 편에 이르러 면앙정은 우리 국문학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영정에 20영이 있고 소쇄원에 48영이 있다면 면앙정에는 30영이 있다. ‘기촌집’, ‘면앙집’ 등 16세기 시조문학의 정수와 가사문학의 꽃이 된 면앙정이다. 당시 면앙정에는 임억령, 양산보, 이황, 김인후, 기대승 등 내노라하는 당대의 스타들이 드나들었다.

면앙정(俛仰亭)

배리 안의 여러 산이 평야를 에워싼 곳

시내 가까이에 겨우 초옥을 만들었네

벼슬길 벗어난 자유로운 이 몸

갈매기와 더불어 좋은 짝을 이루었네

이 시는 김안로가 집권을 잡자 담양으로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쓴 시다. 벼슬에서 물러나 무위자연에 의탁하는 마음이 보인다. 면앙정이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俛則地兮면칙지혜仰則天兮앙칙천혜)로 노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면앙정삼언가(俛仰仰亭三言歌)

俛有地 仰有天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인데

亭其中 興浩然 그 가운데 정자 있어 흥이 절로 넘치누나

招風月 揖山川 풍월을 부르고 산천을 모아

扶藜杖 送百年 청려장 짚고 서서 한 백년 보내리라

면앙정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1972년) 정자에서 제월봉 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면앙정 송순의 무덤이 있다. 가사문학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면앙정가’ 한 구절을 새긴 시비가 면앙정 입구에 있다. 면앙정의 자연경관과 절제된 선비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면앙정 현판(담양 가사문학관 소장)

傷春歌(상춘가)

有鳥嘵嘵 傷彼落花 우는 새는 꽃 지는 것을 슬퍼함이요

春風無情 悲惜奈何 무정한 봄바람을 슬퍼한들 무엇하리

이 시조는 명종 때 윤원형 일당이 일으킨 을사사화(1545년, 송순의 나이 52세)에 수많은 선비가 죽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지은 시로 전해진다. 일명 ‘을사사화가’라고 한다.

1974년 설치된 옥당가 시비(광주 사직공원)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

풍상(風霜)이 섞어친 날에 갓피온 황국화(黃菊花)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 체 마라 님의 뜻을 알래라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면앙정의 대표작이다. 조선 명조 임금은 면앙의 생일에 어주를 보낼 정도로 면앙정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궁중에서 국화를 보내오자 옥당의 관리들이 당황해 할 때 송순이 나서서 즉석에서 지은 시조로도 유명하다.

옥당가 전문(광주 사직공원 시비)

광주 사직공원 오름길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시에서는 임금님의 따뜻한 배려와 주군을 대하는 충성심, 간신배를 경계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사직공원에는 12기의 시비기 조성되어 있다. 이중에서 눌재 박상(1474-1530)과 면앙정 송순(1493-1582), 하서 김인후(1510-1560)의 시비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눌재와 면앙정이 사제관계이고 면앙정과 하서가 사제관계다. 이는 호남문단의 초석이 되는 단계로 매우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충장공 김덕령(1567-1596), 금남군 정충신(1576-1636), 고산 윤선도(1587-1671) 등의 시비는 광주·전남을 문향이라 일컫는 기초라 말할 수 있다.

시비 하나 시 한 편을 살펴보면 당시의 사회가 보이고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음을 볼 수 있다. 단편적인 시 한 편보다 시인과 시, 당시의 사회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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