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사걸(四傑)은 차(茶), 쌀(米), 대(竹), 뻘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걸이 있어 남도 음식은 깊고 다채로웠다. 여기다가 당나라 이백의 시에서처럼 ‘두 사람이 대작하니 산에는 꽃이 피고, 한 잔 한 잔 다시 또 한 잔, 나는 취해 자려하니 그대는 돌아가게, 내일 아침 생각 있거든 거문고 안고 오게나.’ 했던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의 풍류까지가 곁들여졌다.

그리고 남도 음식에는 불편부당이 없고, 밥상의 평등이라는 이념까지가 곁들여졌다고 본다. 이것이 풍요 속에서 의로움을 지키고, 예술을 사랑하는 남도 사람들의 독특한 기질을 만들었다.

전라도 음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도는 산과 들과 바다가 만든 미향(味鄕)이다. 먼저 발효 음식의 천국이 전라도이다. 젓갈과 김치, 홍어는 대표적인 남도 발효 음식이다. 그리고 뻘밭이 넓어 산낙지와 패류 등이 많이 나고, 산이 깊어 산나물과 젠피 등이 지천이다. 이 재료들을 두루 이용한 전라도 밥상에는 한가운데 간장종지가 놓이고 ‘육해공’의 모든 재료가 뒤섞여 뛰어난 맛을 보증할 수밖에 없다.

광주의 오미(五味)는 무등산 보리밥, 오리탕, 한정식, 송정리 떡갈비, 광주 김치이다. 전남 고흥에는 아홉 가지 맛인 구미(九味)가 있다. 참장어, 낙지, 삼치, 전어, 석화, 매생이, 유자향주, 붕장어, 서대회라는 음식이다.

오랜 동안 목사 고을이어서 맛 역사도 풍부하게 전개되었던 나주에는 집장과 소팔진미(蔬八眞味 : 동문안 미나리, 신월 마늘, 흥룡 두부, 사매기 녹두묵, 솔개 참기름, 금계 얼갈이, 전행 마늘, 복암 열무), 어팔진미(魚八眞味 : 구진포 웅어, 황룡 자라, 황룡 잉어, 영산 뱅어, 복바위 복어, 조금물 또랑참게, 몽탄 숭어, 수문리 장어)가 있다.

남도 명문가(종가)의 음식 조건은 가문 만의 전통술, 간장, 된장, 식초와 전래 음식을 꼽았다. 또 <택리지>에 사불여(四不如)라 하여 ‘수령으로 온 벼슬아치가 구실아치(토박이 아전)들만 못하고, 구실아치는 기생들만 못하고, 음악(가무)은 음식 맛만 못하다.’고 했다. 남도 음식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말이다.  

‘개미’란 남도 음식의 특유한 맛을 일컫는데 加味에서 파생된 말로 즉 ‘개미’가 있다는 말로 변형되며, 나아가 ‘감칠나고 곰삭은 맛’을 말한다. 맛도 그늘이 있는 맛, 소리도 그늘이 있는 소리, 사람도 품새가 넉넉하면 ‘그늘이 있는 사람’이라고 송수권 시인은 말했다.

광주를 포함해 남도 23개 시군의 향토 음식들과 맛난 밥상을 차려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영광은 굴비장아찌, 함평은 엽삭젓과 돼지비게 비빔밥, 무안은 모치젓과 기절낙지, 목포는 홍어찜, 해남은 세발낙지, 참게, 토하젓, 진도는 홍주와 구기자와 미역, 완도는 김․전복, 강진은 민물장어와 매생이국, 장흥은 표고와 바지락회, 보성은 꼬막과 양탕, 고흥은 진석화젓과 유자가 있다. 순천과 여수는 서대회 노래미탕, , 광양은 불고기와 재첩국, 구례는 더덕구이와 산채백반, 곡성은 돼지불고기와 은어회, 담양은 죽순회와 빙어와 추어탕과 창평엿,  장성은 메기찜, 용봉탕, 화순은 염소탕과 흑염소구이, 나주는 곰탕과 집장, 영암은 어란과 짱뚱이탕과 낙지호롱이 있다. 광주음식을 다양하게 예거하자면 용봉탕, 오리탕, 홍어, 붕어조림, 꼴뚜기 무생채, 꼬막무침, 추어탕과 숙회, 장어구이, 우렁탕, 떡갈비, 애저, 무등산 수박 등을 들 수 있다.  

신토불이 정신으로 내 고장 음식 사랑해야

내 고향의 제철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것이 ‘신토불이’ 정신이다. 광주 전남만의 독특한 음식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광주의 별미인 ‘애저’이다. 애저는 아저(兒猪) 즉 태중의 새끼 돼지를 말하는 것으로 일부에서 새끼돼지를 먹는 것이 안쓰럽다고 해서 애저(哀猪)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규합총서>에는 ‘돼지새끼집찜’으로, <증보산림경제>에는 ‘저자대’로,  <오주연문장전산고>와 <시의전서>에서는 ‘저태증’으로 나타난다. 원래는 애저찜이 돼지새끼집찜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돼지새끼집을 얻기 어렵고 이를 얻기 위해 어미 돼지를 잡는다는 것도 안 될 일이어서 그저 연한 돼지로 대신하게 됐다.

애저찜은 조리하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새끼돼지의 내장을 꺼내고 뱃속에 삶은 꿩, 찹쌀, 밤, 대추, 마늘, 파, 호도 등을 기름에 볶아 채워 넣은 후 실로 꿰매고 시루 또는 솥 가운데에 대나무발을 걸쳐 그 위에 놓고 수증기로 쪄서 물기 없이 꼬들꼬들한 상태의 고기를 찢어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광주의 애저탕은 새끼돼지를 깨끗이 씻어서 통째로 곱돌솥에 담아 재래된장을 걸죽하게 푼 물을 붓고 대추, 은행, 밤, 마늘, 생강, 녹각, 포부자 등과 함께 만나절 정도 푹 삶는다. 뼈가 흐물흐물 해지면 옹배기에 건져 살을 잘게 찢어서 초고추장이나 새우젓에 찍어먹거나 풋고추, 마늘을 넣고 깻잎에 싸먹는다. 애저탕은 더위를 이기게 하는 음식으로 여름을 타는 사람의 탈진을 막아주는 보양식이었다.

홍어를 먹지 못하는 남도 사람들은 드물다. 홍어는 <본초강목>에 보면, 해음어(海淫漁), 분어(홍어 및 가오리 통칭), 태양어(邰陽漁), 하어(河漁), 포비어, 번답어, 석려(石礪), 고동무치, 간쟁이, 물개미 등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전통 숙성 식품인 홍어는 자연 발효식품으로 사계절 먹어도 별탈이 없고, 저지방 고단백 알카리 식품으로 몸에 이로운 음식이다. 홍어는 몸 안의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분해되어 소화 효소인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이 만들어진다.

홍어를 삭히게 되면 톡 쏘는 냄새가 나는데 이것은 고기가 부패되어 나는 냄새가 결코 아니다. 홍어가 가지고 있는 암모니아는 부패 세균의 발육을 억제하므로 식중독 발생의 염려가 없는 것이다. 잘 삭힌 홍어는 묵은 김치처럼 오래 보관할수록 살이 단단해지고 싸한 맛이 더욱 깊어진다.

김치나 된장 고추장 모든 주류 그리고 서양의 치즈나 야구르트 같은 발효음식은 한번 맛을 들이면 자주 찾게 되는 특징이 있다. 일찌감치 요소가 무엇인지 알기 전부터, 또 요소가 분해되면 암모니아가 된다는 과학을 알기 전부터 홍어를 선택해 먹어 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놀랍다.

홍어를 잘 먹는 비결은 <홍어회>를 <삶은 돼지고기>와 겹쳐 <묵은 김치>로 싸서 한입에 넣고 씹으면 세 가지 맛이 어우러진다. 마지막으로 <막걸리>로 입가심하면 홍어의 톡 쏘는 맛을 중화 시켜 기분이 좋아진다. 막걸리를 마시는 이유는 막걸리에 단백질과 유기산이 들어 있어, 암모니아의 톡 쏘는 맛을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홍어의 찬 성질과 막걸리의 따뜻한 성질이 잘 조화되어 완벽한 음식 궁합을 자랑한다. 그래서 ‘홍탁’이라고 한다. 홍어 중에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콧잔등 살과 잔뼈가 자근자근 씹히는 날개 부분, 고소롬한 창자 부위를 상품으로 친다. 그 다음 자리를 살과 뼈가 차지한다.

돈 없으면 전장포 백화새우나 잡아먹지

신안군 북서단에 있는 모래의 섬 임자도는 새우젓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임자도 북쪽 맨 끝동네 전장포의 새우젓은 우리나라 새우젓의 대명사이다. 그래서 목포 일대의 술집에서는 “돈 없으면 전장포에 가 백화새우나 잡아먹지….”라고 빈대떡 노신사 노랫말을 바꿔 부른다.

전장포 새우가 손에 꼽히는 이유는 김장에 쓰이는 젓새우의 주산품인데다 그 맛과 풍미가 으뜸가기 때문이다. 전장포의 먼지 모래를 딛고 사는 백화 새우는 특히 그 몸집과 색깔이 먼지 모래처럼 곱다. 전장포에서는 해마다 1천여 톤의 새우를 잡아내어 전국 새우젓 어획고의 60%를 차지한다. 특히 전장포에서 5월과 6월 사이에 잡히는 살찐 새우젓은 각각 ‘오젓’, ‘육젓’이라 하여 ‘맛난 젓’으로 유명하다.

전장포 마을 뒤 솔개산 기슭에는 길이 102미터, 높이 2.4미터, 너비 3.5미터의 말굽모양 토굴 네 개가 있는데 이곳은 김장철에 맞춰 비싼 값으로 팔려나가기 위해 봄에 잡힌 전장포 새우젓이 ‘맛내기 잠’을 자는 곳이다.

남도 음식 감칠맛의 숨은 비밀 ‘콩’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말처럼 남도 음식 솜씨는 장맛으로 평가된다. 흔히 한국음식은 구수하고 감칠맛이 나며 깊은 맛이 특징이다. 이는 오랜 시간과 정성의 숨결이 느껴지는 발효의 맛 때문이다.

농경사회인 한국에서는 ‘벼’와 함께 ‘콩’이 많이 재배되었고 콩을 주재료로 한 다양한 장류가 발달하게 되었다. 쌀 문화권인 한국은 쌀을 주식으로 채소류를 부식으로 한 식단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고기 대신 콩으로 보충하였고,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장류를 탄생시켰다.

우리나라 고유의 간장과 된장은 콩과 소금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다. 먼저 간장, 된장의 주재료는 콩으로 만든 메주다. 메주를 쑬 때는 가을에 수확되는 햇콩으로 알이 굵고 잘 여물어 벌레 먹지 않은 것을 선택하며 푹 삶아 쪄서 콩의 무름성을 좋게 하여 발효성을 높였다.

허영만은 <식객> 18권에서 간장의 다섯 가지 덕을 이렇게 말했다. 단심(丹心) : 다른 맛과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 항심(恒心) : 오래 두어도 상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불심(佛心) :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한다. 선심(善心) : 매운맛이나 독한 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한다. 화심(花心) :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하고 자연과 동화한다. 남도에서는 집집마다 독특한 그 집만의 ‘내림장’을 만들어 먹어왔다. 이 장맛이 남도 맛의 비밀의 하나이다.

내 고장 음식을 지키고 가꿔나가자

가정마다 또 사람에 따라 체질이며 음식과 기호가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단 말인가? 결국 한가지 음식의 집단 급식은 개인의 건강을 무시하고 나아가 가정 특유의 맛에 대한 정체성 상실과 창의력 말살에 앞장서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기밥통과 학교 급식 그리고 사먹는 김치와 즉석음식 등에 반대한다.

발효식품인 술이나 된장 김치 등이 익어가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오랜 기간은 다름 아닌 숙성과 발효의 시간이다. 이러한 발효식품 같은 것이 전라도 토박이 말의 맛이요 전통 음악의 흥이며 남도 음식의 개미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을 햇빛과 바람을 쐬고 자라고 우리 지역에서 제철에 난 음식 재료를 사용하여 갈무리하면서 보살피고 정성으로 요리해야 개미 있는 남도 음식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내며, 가꾸고 지켜야 우리 전라도의 말과 음식과 음악이 오롯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결국 내 고장의 음식을 지켜내고 가꿔가는 일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맛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남도 음식’, 그 ‘남도 음식’의 맛과 멋을 자랑하기 전에 우리는 남도 음식의 속에 숨은 문화사적, 역사적, 인문학적, 과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알고 소화시키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남도 음식의 특화된 무엇을 세계화할 것인가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강현구 광주광역시 문화재위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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