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시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 않았다. (…) 내 몸과 마음에 맞는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는 ‘죽음’인지 ‘권태’인지 모를 ‘절대적인 상태’를 좋아하고 즐겼다. 그 이후로도 그 이전으로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이상한 문학 세계를 보여주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자신의 생의 느꺼움을 즐겼다. 그는 살아 있는 것이 스스러웠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서울의 문화유산 보호 단체인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국민은행의 매입 기금 기부로 매입한 첫 번째 문화유산이 천재작가 ‘이상의 옛 집터’였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10. 지금은 몇 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좁고 볼품없다. 이상이 살던 곳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아직 철거당하지 않은 재개발 지구의 어느 허물어져가는 집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 이상하게 퇴락한 ‘이상 옛집’이 내년 4~5월 경 새 단장하고 개관한다. 시인 이상이 3세 때부터 23세 때까지 거주했던 공간이다. 이 공간은 ‘국민신탁’이 ‘아름지기’와 함께 공동 운영하고 있다. 내부에 있던 가설 건물을 해체하고 이상의 공간이라는 조그만 모뉴먼트형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그동안 명성에 비해 남겨진 이상의 흔적이 없었던 상황에 비추어 대표적인 이상을 기억하는 기념 공간이 될 것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였고, 한편으로 건축가이기도 했던 이상(李箱:1910~1937)은 1911년부터 1934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요절한 이상의 생애 거의 전부가 여기에 존재했고, 천재적인 작품 대부분이 여기에서 태어났다.

그 33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18가구가 죽―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송이 꽃과 같이 젊다. (…) 조용한 것은 낮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 들인다. 전등불이 커진 뒤의 18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여러 가지 내음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도란내, 뜨물내, 비눗내….

나는 지구에서 내려버리고 싶었다

그런 방에서 날개를 달고 싶은 천재 작가의 소설 속 분신은 아내와 함께 세를 들어 살며 그날그날을 산다. 아내한테는 늘 내객들이 들어오고 아내는 접객을 한다. 그 삶은 속되어 소설 속의 나는 우울증을 앓는다.

아내에게 손님이 올 때면 방해하면 안 되기 때문에 가구로 가려진 윗방 뒤에서 꼼짝 않고 누워 손님이 떠나기를 기다리는 생활이었다. 손님이 가고 나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그러나 나는 돈을 쓸 줄을 모른다.

한번은 거리로 나가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왔고 아내가 준 약을 먹고 깊은 밤에 빠지게 된다. 우연히 나는 아내가 준 약이 아스피린이 아닌 수면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버리고 싶었다.

이상(본명 김해경)은 1910년 9윌 23일에 서울의 사직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연창(金演昌)으로, 이상은 큰아버지인 연필(演弼)에게 2살 때 옮겨가 살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큰아버지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큰아버지댁으로 옮겨 살았던 것이다.

총독부의 기술 관리였던 큰아버지댁에서의 생활은 윤택했지만 고종 때 증조부가 정3품 벼슬을 지낸 강릉 김씨 문중의 종손이 된 사실은 이상에게 적잖은 갈등을 안겨주었다.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는 것 같은 삶이었다.

이상이 23살 때까지 살았던 통인동 집은 소설가가 「종생기」에서 ‘10대조의 고성’이라고 한 것처럼 꽤나 큰 한옥이었다. 본채에 행랑채와 사랑채까지 딸린 300여 평의 넒은 집이었다. 하지만 이 집의 옛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현재는 이 집도 10여개의 필지로 분할돼 여러 채의 한옥들이 들어서 있다. 아무도 이곳이 이상의 옛 집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지금의 통인동 집은 ‘유곽’같은 「날개」 속의 33번지 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날개」 속의 ‘나’와 통인동 집에 살던 ‘나’는 정신병리적으로 똑같았을 것이다.

부리나케 와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어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김에 노크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보면 아내가 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감발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그리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 방이면서 내 방 주인이 아닌 듯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식민지 지식인의 어정쩡한 ‘포우~즈’였다. 의식의 놀음이었다.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삶이었다. ‘내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그러져 나오지 않았다.’고밖에 회고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런 삶의 자의식이 불러일으키는 분열증, 편집증, 그리고 죽음에 대한 절망적 충동 등이 이상의 문학을 규정지었다.

절망이 아닌, 주인공이 아닌 나의 포우~즈

선명학교 졸업 후 열다섯 살인 4학년 때 동광학교가 보성고보로 병합되자 이상은 이 학교의 4학년으로 편입학을 하였다. 선후배로 이헌구, 김기림, 김환태, 이강국, 임화, 유진산, 원용석, 김상기 등이 있었으며, 당시 보성의 미술 선생으로는 당대 최고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재직하고 있었다.

그해(1924년)에 이상은 교내 미술전람회에 유화 ‘풍경’을 출품하여 우등상에 입상하였다. 그림에 소질을 보인 이상은 누이 옥희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리곤 하였다.19살(1929) 봄, 경성공전을 졸업한 후에 총독부 기수로 취직하였으나 4년 후 폐결핵의 악화로 퇴직하고, 백천 온천으로 요양가 금홍(錦紅)을 만나게 되었다. 이상은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그는 1934년 구인회의 동인이 되었으며,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였다. 난해하고 파격적이었으며 그 자체로 기존의 문학 문법을 파괴하는 작품들이었다.

‘제비’, ‘쓰루’, ‘무기’ 등의 다방을 경영했으나 실패를 거듭하고, 1935년 인천, 성천 등을 여행하였다. 1936년 변동림(卞東琳)과 결혼했다.1936년 10월, 이상은 동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모색하려고 하였으나,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었다. 1937년 사상 불온 혐의로 일본 경찰에 유치되었으나 건강이 악회되어 보석으로 출감했다.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경 동경 제대 부속 병원에서 죽었다.

유해는 화장되어 아내 변동림이 유골로 가지고 귀국했다. 이상의 친구들이 모인 가운데 같은 해 3월 29일 같은 폐결핵으로 사망한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치르고 영결식이 끝난 뒤 유해는 6월 10일 미아리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매장하기 전 데드마스크를 떴으나 한국에서 유실되었다고 한다. 아! 이상의 데드마스크….

주요 작품으로는 전기 외에 소설 「지주회시」,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등이 있고, 시에는 「이런 시(詩)」, 「거울」 등이 있다.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아버지를 뛰어넘고, 문학을 해체하고…

이상이 주로 문학 활동을 하던 1930년대는, 식민지의 병리 현상이 완연한 시기였다. 그로테스크한 왜곡의 상태와 불안 의식, 세계 파국의 공포, 의식 체계와 형태의 파괴, 숫자의 뒤틀림과 유희, 그리고 자기 분열과 자의식의 과잉 등의 비합리적 세계로 일관되고 있다. 기존의 문학 형태를 파괴하고 해체시킨 뒤에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 스타일로 구축된 세계를 구축해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일찍 열어 보여준 작가였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후레자식이면서 모든 후대 문학의 아버지 노릇을 한 작품들이었다.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이라는 지금도 생소한 이 기법으로 이상은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지식인의 좌절 의식과 분열된 자의식의 세계를 그렸다. 이상의 삶의 방식은 작품만큼이나 독특했다. 이 희귀한 작가를 그래서 이후 세대는 연구하고 파헤치고 정리해보았는데, 아직 다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떤 새로운 문학 형식이 요구되는 문학 환경이 시작되면 언제나 이상은 다시 살아나 외칠 것이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번만 더 날자꾸나./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대동문화 80호 [2014 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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