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백제가 추천해준 책이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였다.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이 작가의 책은 이제 그만이라고 스스로 선언했었다. 한 작품만 읽고 그 작가를 평가하다니 참 어리석었다. 실은 세계 10대 작가에 선정될 정도로 그는 인정받는 작가였다.

죽음이 사라진 도시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

<죽음의 중지>라니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겨울이 점차 깊어갔고, 책 속의 이야기는 나의 산행길에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죽음의 중지>를 통해 깨달은 것은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마음의 진동이 시키는 대로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삶에 충실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분방하게 살다가는 늙은 남편과의 관계가 심히 불편해질 것이라는 준엄한 현실의 벽을 타넘으려는 용기가 내게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함께 들었다.

차라리 ‘내가 참자.’라는 주의로 가다보니 소극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비록 소극적인 삶이지만 그 안에서라도 나름의 규칙을 세워 어쨌든 살아보는 것, 낙엽 진 숲길을 산책하며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삶의 규칙과 절대적인 모순을 이루는 이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이해해 줄 만한 불안을 일으켰다. 총 사십 권이나 되는 세계사 책을 훑어보아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는 서술은커녕, 단 한 건의 사례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기만 하면 된다.”

어느 나라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작가가 포르투갈 사람이니 분명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쯤 되지 않을까 싶다. 1755년 11월 1일에 일어났던 ‘리스본 대지진’이후, ‘죽음의 중지’가 시작되었던 도시는(소설 속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지진의 충격만큼 컸을 법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국왕의 모후는 그 위중한 상태로 죽음을 모면했다. 마치 운명의 여신이 낫으로 실을 끊어내기를 멈춘 것 같았다.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던 교통사고나 온갖 사고로 인한 죽음들은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종결을 멈추고 말았다.’

누군가 발설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소문은 날개를 달았고 정확히 새해가 시작된 날로부터 전국적으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기뻐해야할지 난감해야할지 헷갈린 가운데 서서히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직접 뽑은 최고의 작품

놀랍게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방송국이나 신문사였다. 초자연적 현상의 전문가를 세 명씩이나 불러 토론을 시키고 마법사를 두 명, 천리안을 급히 불러다 사태를 분석하고 의견을 내게 하였다. 익살꾼들은 여유 있게 ‘죽음의 파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이 특별한 사태를 묘사하는 데 위기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죽음의 부재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이 실존적 상황을 두고 위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터무니없고 어울리지도 않고 또 가장 기본적인 논리에도 모욕이 되는 일일 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지 진실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갈증은 더해가는데, 정부관 계자나 정치가들은 정보 탓을 하며 “걱정할 일은 전혀 없다”고 장담을 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말, “효율적이고 일치된 행동이 요청된다.”고 운운하면서…‧. 허튼소리로 국민을 단속한다. 정부, 정치가, 언론사들이 어떻게 국민을 호도하고 왜곡하는지 그 속성을 독자들은 눈치 챌 수 있다.

다음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인간들의 속성을 이 소설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중지를 기뻐하는 사람, 집안의 환자가 어서 죽어줘야 하는데 살아남아 골치를 썩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일차적으로 정부에 항의하며 살길을 찾아내라고 아우성인 곳은 장의업계를 하는 사람들이었고, 병원은 환자들로 넘쳐나는데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천주교의 주교는 죽음이 없다면 부활을 부정해야 하고 신을 인정할 수 없다며 노발대발 한다. 생명보험회사의 해약 사태는 실로 엄청났으나 간신히 해결책을 찾아 기사회생했다.

죽을 수 없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대재앙입니다

어느 주부는 영원불멸한다는 소식에 너무 기쁜 나머지 국기를 내다걸었는데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으로 확산되어 장관을 이루었다. 어느 집은 밤중에 몰래 국경을 넘어 조부의 임종을 맞게 하고 시신을 매장했다. 비밀은 새나가고 너도나도 병자를 싣고 국경을 넘는 일이 생겼다. 이웃 나라에서 국경을 몰래 넘어오는 일 등 반사회적인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깨달아갔다. 죽을 수 없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사실을…. 생명의 순환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죽음의 중지뿐만 아니라 생명 탄생의 중지, 학교 교육의 중지, 신문 방송의 중지, 병원 치료의 중지 등등, 헤아려 감사해야 할 것은 너무도 많다. 나무 한 그루에도 풀숲의 작은 벌레에게도, 함초롬히 핀 들꽃에게도…. 도처에 네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임을 깨닫는 독서였다.

대동문화 80호 [2014 1,2월호]

문향선 수필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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