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산(822m)은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 어릴 적 추억이 골골마다 서려 있다. 학창시절 단골 소풍장소였다. 골짜기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장기자랑을 하며 추억을 만들었다. 한재골과 두무동 계곡도 애틋하다.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며 땡볕 더위를 잊었다. 그때 하루해는 유난히 짧았다.

부모를 따라 땔감을 하러 다닌 곳도 병풍산 자락이었다. 챙겨 온 점심을 먹을 때면 계곡물에 된장을 풀어 가재를 잡기도 했다. 인근 군부대의 사격 훈련 때면 들려오던 포성마저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의 추억이 아직도 오롯하다.

하여, 병풍산은 심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곳이다. 지금 살고 있는 광주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잘 다듬어진 편백숲길도 발걸음을 유혹한다. 옛 추억이 서린 그 길이다. 길은 산의 허리춤을 따라 간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솔방솔방 걸을 수 있는, 참 좋은 길이다.

마냥 하늘거리는 것만으로 충분해

병풍산으로 간다. 병풍산이 품은 편백숲길은 한재에서 시작된다. 장성군과 담양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산정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가 위엄을 뽐낸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한재벌판은 넉넉하다. 그 너머로 광주 첨단단지가 보인다. 남도의 들녘을 적셔주는 영산강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병풍산이 품은 숲이 넉넉하다. 싱그러운 연둣빛에 금세 눈이 시원해진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시름까지도 빠르게 걷히는 것 같다.

한재에서 큰골로 방향을 잡았다. 왼편 산자락으로 편백숲이 넓다. 반듯하게 하늘로 쭉-쭉- 뻗은 편백이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바윗돌과 어우러진 숲이 편안해 보인다. 편백숲과의 만남을 내 몸이 먼저 반긴다. 눈이 호사를 누린다. 그 숲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보약 같은 숲이다.

길이 편백숲 옆으로 지난다. 길도 제법 넓다. 반듯하던 길이 S자로 미려하게 구부러진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 예스럽다. 길의 폭이 넓지만 자동차는 다니지 않는다. 호젓한 분위기에서 맛보는 한적함이 더 좋다.

길가에 노란 금계국과 하얀 개망초가 여기저기 피어 있다. 꿀풀과 병꽃도 저마다의 색깔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얼굴에 살포시 와 닿는 바람결도 달콤하다. 산바람에 실려 온 숲의 내음을 마음 속 깊이 호흡한다.

숲의 기운을 혼자서 누린다는 생각에 괜스레 가족들한테 미안해진다.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걸으면 더 오지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비 내리는 날 연인과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도 좋겠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길가의 쉼터에 앉았다. 산자락에 들어앉은 월성저수지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숲길에서 호흡하는 맑은 공기와 물 한 모금으로도 행복하다.

길 양쪽으로 이어지는 편백숲은 여전히 아름답다. 편백숲을 보면서 걷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상쾌해진다. 숲에 넘실대는 피톤치드와 음이온 덕분일까. 호흡도 편안하다.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숲길에서 마냥 하늘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온 몸에 물살에 빨려들 것 같은 느낌

어디선가 따다다닥- 따다다닥- 울림이 들려온다.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다. 꿩의 울음소리와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온다. 귓전을 울리는 산새들의 울음소리도 청아하다.

임도를 따라가던 길이 좁아지더니 숲속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나무로 만들어놓은 계단에서 걷는 이를 위한 배려심이 묻어난다. 숲길이 더 호젓해지고, 오가는 사람도 줄었다. 숲길을 나 혼자서 차지한 것 같다.

가파른 숲길을 내려가니 큰골이다. 계곡의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다. 길도 다시 넓어진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임도는 아니다. 옛길 그대로 울퉁불퉁하다. 길이 계곡 옆을 따라 간다. 맑고 깨끗한 물소리가 발걸음과 동행한다. 계곡 숲길을 걷는 묘미가 쏠쏠하다.

숲길에서 잠시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갔다. 깊은 계곡이 아닌 데도 물이 맑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물에 한동안 눈을 맞췄더니, 내 몸이 물살에 빨려들어 갈 것만 같다. 계곡물에 손을 씻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계곡과 나란히 난 숲길을 따라가니 홍골이다. 나무가 피워낸, 이름 모를 하얀 꽃이 예쁘다. 길옆의 밭에는 남새가 파릇파릇하다. 집도 드문드문 들어서 있다. 한동안 동행했던 계곡물은 월성저수지를 만나 반가움을 나눈다.

병풍산 편백숲길은 여기서 월성저수지를 끼고 금계사로 이어진다. 홍길동 우드랜드 편백숲을 거쳐 병풍산 매봉까지 오를 수 있다. 이렇게 한 바퀴 도는 거리가 40리에 이른다. 산속 숲길을 따라 편백 군락지와 계곡, 산봉우리를 모두 만난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숲길이다. 온몸으로 활력을 호흡하며 큰 힘 얻을 수 있는 편백숲이다.

가는 길

호남고속국도(고창-담양 간) 북광주 나들목에서 담양 대치를 거쳐 백양사 방면으로 간다. 담양과 장성의 군계를 이루는 한재를 중심으로 병풍산 편백숲이 자리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은 장성군 북하면 월성리 산76-3.

가볼 곳

천년고찰 백양사가 가깝다. 계곡과 연못이 어우러지는 신록으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절집의 비자나무 숲도 귀하다. 천연기념물(제153호)로 지정돼 있다. 10년 넘게 주인 없는 양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단전리 신촌마을도 지척이다. 장성호 문화예술공원도 들러볼만 하다. 대치에 담양우표박물관도 있다.

문의

장성군 산림편백과 ☎061-390-7424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이돈삼 전라남도 대변인실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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