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도입되어 이후 조선 왕조 5백년 간 공직자를 선발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던 과거 제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은 오는 11월 22일까지 ‘1789년 광주의 과거 시험’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광주는 예전부터 교육의 도시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1567년 당시 광주목사 최응룡이 문과급제 동기생들과 모여 충장로 2가 옛 광주우체국 자리에 있던 '희경루'란 누각에 올라 개최한 연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희경루 방희도>(98.5×76.5cm).

언제부턴가 광주를 일러 교육 도시라고 해왔다. 학교도 많고 이른바 명문대 진학률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원체 공부를 좋아하는 도시여서일까? 그런데 가끔 궁금해진다. 조선 시대에도 광주는 교육 도시였을까?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면 교육이란 결국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조선 시대에도 글공부란 현실적으로 대개 이런 의미였다. 그 시절에 양반 자제라면 예닐곱 살이 되기 무섭게 과거시험 준비에 돌입해야 했다. 그리고 그 준비 과정은 급제를 하고서야 끝났으므로 시간이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보니 피로감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남원부사의 아들로 연일 과거 준비에 지친 이몽룡이 열여섯에 퇴기의 딸에게 한눈을 팔았던 것은, 그래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다.

사직공원에서 바라본 광주공원 사마재와 향교가 보인다

왕버들나무에 북을 걸어놓은 이유

그런데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란 일반적으로 문과의 최종 시험인 전시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광주읍지>엔 조선왕조 500년 간 광주 출신으로 문과 급제한 수가 130여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광주에는 이런 과거 시험과 관련된 흔적도 많다. 광주의 과거 급제자 중 임진왜란 이전에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한 집안은 광산 이씨 문중일 것이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10명 이상의 급제자를 배출한 장흥 고씨와 광산김씨와 함께 3대 문중에 속한다.

그 중 광산 이씨 문중은 무려 12명의 급제자를 배출했다. 1393년 이초를 시작으로 1577년 이길에 이르기까지 180여 년 동안 배출한 수이므로 결코 적지 않다. 그 흔적이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서 있는 괘고정(掛鼓亭)이란 왕버들나무로 남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필문 이선제가 심었다고 한다. 이선제는 1419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그가 심었다는 말은 아마도 그의 급제를 기념해 심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예전엔 과거 급제자가 나오면 여러 기념행사를 했다. 화표(華表)라 하여 고향 마을 입구에 솟대 같은 것을 세운 것도 그중 하나였다. 이선제 집안에선 화표 대신 나무 심기로 대신했을지 모른다. 여하튼 화표든 식목 행사든 요즘 명문대나 고시 합격 때 현수막을 내건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괘고’라는 이름은 이선제 이후 이 집안에서 다수의 문과 급제자가 연거푸 나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급제 소식 때마다 이 집안에선 이 나무에 북을 걸어놓고 축하연을 열었다. 여기서 북은 급제자가 삼일 동안 거리를 행진할 수 있는 이른바 삼일유가(三日遊街)와 관련된 듯하다. 이때 급제자 앞에 각종 풍물패가 자리 잡는데 그때 쓴 북을 가져다 나무에 걸어놓았을 것이다.

축하연도 문희연(聞喜宴)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급제자가 나오면 이를 자축하는 성대한 잔치를 열었는데 이것이 바로 문희연이다. 요즘 집안에 고시 합격자가 나오면 일가친척과 동네 사람들을 죄다 불러다 한턱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광산 이씨 문중은 이발과 이길 형제의 급제 이후 더 이상 광주에서는 급제자를 내지 못한다. 이는 1589년 기축옥사, 이른바 정여립 역모 사건에 이발ㆍ이길 형제가 연루됐다는 이유로 큰 화를 당한 결과다.

그럼에도 과거 시험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은 결코 식지 않았다. 광주공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다 보면 언덕 위로 작은 공터가 있다. 이곳에 어린이헌장 기념탑이 있는데 원래는 조선시대 사마재(司馬齋)란 건물이 있던 곳이다. 사마란 소과, 즉 생원진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이 건물은 이런 소과 입격자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참고로 소과에 든 자들은 합격이라 하지 않고 입격이라 표현한다).

생원, 진사란 누구인가? 생원은 사서오경 등 유교 경전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고, 진사는 제술, 즉 시와 문장 짓는 능력을 검증 받은 사람이다. 조선 시대에 광주에서는 이런 생원, 진사로 총 360여명을 배출했다. 그러나 생원 진사가 되는 것만으로 과거 시험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관직에 나가는 이상적인 통로인 대과, 특히 문반이 아니라면 문과에 응시해 합격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었다. 그래서 이들만이 따로 모여 공부하는 곳이 필요했으니 그것이 바로 사마재였다. 광주 사마재는 문회재(文會齋)로도 불렸는데 조선 시대 초엽의 기록부터 나온다.

조선시대 사마재가 있던 곳이다. 지금은 광주공원 헌장 기념탑이 서있다. 사마재는 생원, 진사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이다

옛날에도 입시학원이 있었다

반면 이와 조금 다른 공부방이 또 있었으니 양사재(養士齋)가 그것이다. 말 그대로 하자면 선비를 양성하는 곳인데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생원진사가 아닌, 일반 유생들이 모여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입시학원 같은 곳이었다. 광주 양사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건물이 세워진 것은 1698년이고 그 위치가 현재 향교 맞은편 서현교회 자리라는 사실 정도는 알려져 있다.

양사재는 대개 관아나 독지가 혹은 수험생들이 돈을 거둬 설립하곤 했다. 과거 준비에 드는 비용이 적잖게 들고 최신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동료 수험생들과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 등 여러 요소가 결합해 생겨났다. 실제로 전라도의 다른 양사재를 보면, 1년에 얼마 동안 양사재에서 기숙 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했고 모의고사로 백일장을 봐야 했으며 유명 강사를 초빙한 요즘의 특강과 비슷한 강회(講會)도 열었다고 한다.

물론 누구나 원한다고 양사재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선발 고사를 봐야 했다. 따라서 이 시험에 떨어졌거나 워낙 독학을 좋아하는 수험생이라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이때 일종의 고시촌이나 독서실 구실을 했던 곳이 고즈넉한 절이었다. 이런 절로는 인적이 드물면서도 집과도 적당히 가까우면 더 좋았다.

조선 초엽 광주 사람 김극기의 시를 보면 증심사, 규봉사, 금석암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들 절은 모두 무등산에 있던 것이다. 아마도 1405년 급제 전 김극기가 수험 준비를 하면서 드나들었던 절이었을지 모른다. 비슷한 유추는 1546년 생원진사시에 동시 입격하고 28년 뒤 문과에 급제한 박광옥의 경우에도 할 수 있다. 그의 시 속에 어등산과 절집 얘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경험 탓으로 볼 수 있다.

자, 이렇게 보면 조선 시대 광주 지역 양반들이 현실에서 가장 몰두했던 문제는 과거 급제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몰두가 강하면 탐욕으로 변한다고 했던가?

조선 후기에 들면 과거 시험은 엄정한 국가 고사가 아니라 거의 코믹한 수준으로 바뀐다. 대리 응시, 협서(커닝페이퍼) 지참은 아주 일상적이었다. 영조 때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린 박문수가 편법으로 과거에 급제한 사실은 당대 사람들에겐 아주 공공연한 비밀이었었다.

광주 향교 명륜당. 지역 양반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몰두했던 문제는 과거 급제였다.

과거 시험 커닝을 봐주어라!

정조 때는 시험 답안을 대신 써주는 것쯤은 임금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길 정도였다. 실제로 그 시절 광주목사가 아들의 과거 시험에 사람을 써서 고사장에 딸려 보냈다가 특별 점검반에 들킨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보고받은 정조는 답안을 대신 작성한 것도 아니고 다만 글씨 정도를 대필해 준 것인데 뭐가 대수냐며 사건을 불문에 붙였다.

이렇게 인재 발탁의 등용문이던 과거 시험이 혼탁해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시험 감독관 매수, 합격에 따른 뒷돈 거래까지 성행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세태에 염증을 냈다. 구례의 선비 황현이 <매천야록>에서,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과거시험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꼬집은 것이 아니더라도 조선 말엽 과거 시험의 부패에 코를 틀어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조선 500년 간 과거에 급제한 1만 5,000명의 주변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의 한숨을 생각하면 이미 부패는 예고된 일이었지 모른다.

이런 과거 시험의 역사를 더 알고 싶다면 때마침 관련 전시회가 있어 추천한다. 지난 10월 8일부터 오는 11월 22일까지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는 <1798년 광주의 과거 시험>이란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과거 시험의 뒷얘기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대동문화 91호. 2015년 11,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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