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일요일인 25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해 자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임명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그를 둘러싼 공방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조 후보자 본인과 직계가족은 물론이고, 이혼한 동생과 친인척까지도 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부친의 묘비까지도 공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과거 사노맹 활동 이력, 재산 형성 과정, 폴리페서 논란, 사모 편드 등등...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조국 후보자는 모든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그의 도덕적 신뢰는 이미 훼손될 만큼 훼손됐다. 설령 그가 장관에 임명된다고 한들, 그의 순탄치 않을 앞날이 불 보듯 뻔하게 보인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 연합뉴스

많은 의혹 가운데서도 특히, 조 후보자 딸에 대한 의혹은 명백히 밝혀져야 할 민감한 사안이다. 세간에서는 조 후보자의 딸이 부모가 가진 지위를 이용해 스펙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 가고 나아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0~30대는 상실감과 분노를, 40~50대는 상대적 박탈감을, 60~70대는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며 “딸에 대한 의혹은 신속히 규명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3일밤 서울대에서 열린 촛불 집회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 주말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촛불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집회는 특정 단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닌 재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집회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성향에 치우친 집회가 아니라고 밝혔다.

집회에 앞서 23일에는 고려대학교 서울 캠퍼스에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나 붙었다. 자신을 고려대 컴퓨터학과 14학번 명훈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대자보에서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을 거론하며, 현 정부의 실정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한탄조로 묻고 또 묻고 있다. 그래서, 모두 안녕들 하냐고. 아래는 대자보 전문이다.

지난 23일 고려대 서울 캠퍼스에 나붙은 대자보를 한 학생이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

1. 불과 두 주 전 대한민국 법무부의 새로운 수장이 내정되었습니다. 아, 물론 다른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으며 조국의 안녕을 위해 거침없이 대검을 뽑을 수 있는 사람 이겠지요.

문재인 대통령 본인의 말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수 있는 사회에는 철저한 준법정신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준법을 감시하는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민초를 위해 험로를 마다치 않는 인물이 적임자인 것만은 분명하겠습니다. 만수산 드렁칡 마냥 얽혀있는 공무원 나부랭이들 연줄을 잘라내고자 하면 말이지요.

그래서, 어떻습니까?

오늘도 들을 강의가 마땅찮아 등록금 생각에 고달픈 대학생들의 학습권은 보장해야겠습니다만, 조국이 부르는데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논문을 써 내려가는 대학원생들이여, 도대체 당신은 고작 2주짜리 랩 인턴은 왜 안 했습니까?

아 참, 준법정신은 크게 어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요. 법을 제대로 닦아 놓지 않는 입법기관 탓을 하노라면 차마 그 끝을 볼 자신이 없어 내 그만두겠습니다.

반도 북녘에는 미상 발사체가 들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고위 공무원들의 ‘지시’에 의혹을 제기한 죄로 젊은 사무관을 막다른 선택으로 내몰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 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국비지원 비정규직을 내놓는 몹시도 뒤숭숭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2. N포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를 두고 세상은 낭만도 모르고 호시절을 흘려보내는 세대, 열정도 패기도 없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장장 68%에 이르는 대학 진학률을 등에 없고 서너 자리대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대·공기업에 지원하자면, 어학성적 정도는 ‘스펙’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 시대에, 달랑 제 이름 석자만 가지고 이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이 우리 세대 아닌지요?

네, 우리는 낭만도 모르고, 호시절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그런 나날을 제대로 허락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호주와의 관계가 마땅찮았거든요.

우리는 여전히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할지도,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린 역사의 현장에 당당히 자리했고, 촛불로 쌓아 올린 이 세상이 적어도 한 걸음쯤은 나아 갔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권력이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거든요.

저는 그저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안녕들 하신지요. 별달리 유난할 것 없이 잘 살고 계신지요.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안녕들 하시지 못한지요.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실개천에서 붕어, 가재, 개구리로 각자 잘 살아들 오셨는지요. 드넓은 바다에서 실뱀만도 못한 이무기들이 설쳐대는 통에 제 몸 하나 담글 물 한 방울 남아는 있으신지요.

혹시 안녕하지 않으셨다면, 앞으로도 계속 안녕하지 않으실 참인지요.

저는 다만 조용히 여쭐 수밖에요.

그래서,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임영열 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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