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숙

설 연휴 때 본 영화 ‘부러진 화살’을 최근 ‘영화 다시 보기’로 다시 보았다. 추석 연휴 때 영화 ‘도가니’를 보고 가을 내내 ‘도가니앓이’를 했는데, ‘부러진 화살’ 역시 지금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지난해 9월 개봉한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의 장애 학생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는 500만 관객을 동원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공분을 사 결국 인화학교 법인이 폐지되었다. 언론도 시민 단체도, 행정도 못한 부조리를 500만 관객을 등에 업은 영화가 해낸 것이다.

‘부러진 화살’과 ‘도가니’는 실화를 다뤘다는 점과 사회 부조리를 응시했다는 점, 영화 개봉 후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두 영화는 닮은 듯 다르다. ‘도가니’는 가해자를 명확한 악으로 정의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그대로 전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킨 반면 ‘부러진 화살’은 주인공을 정의로 그리지도 않았다. 다만 법원의 절차 문제점, 그리고 오만함을 지적했을 뿐이다.

법조계의 위신은 그렇게 중요한 가치인가?

이 영화 개봉 후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사법부가 영화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명한 것은 국민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영화 내용에 사법부에 대한 노골적인 질타가 보이며, 작품에 담긴 시대 비판이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5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석궁 테러 사건’은 사립대학 교수가 학교 재단으로부터 교수직을 박탈 당하자 법적 공방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재판부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교수가 해당 판사를 석궁으로 테러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법원의 관점에서 보면, 석궁 사건에서 판사가 화살을 맞았는지 아닌지 여부는 김 교수의 유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중요한 쟁점은 아니다. 교수가 흉기인 석궁을 장전하고 판사를 겨냥한 순간, 이미 살인 또는 상해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다. 판사가 화살을 실제 맞았는지 아닌지도 법원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오히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흉기를 판사에게 겨누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판사들에게는 등골이 서늘한 일이고, 용납할 수 없는 사법 테러다.

그러나 교수 입장에서 보면, 쏘지도 않은 화살을 맞았다고 하니 황당할 노릇이다. 사실은 조작되었고, 증거는 사라졌는데, 이를 설명해주는 자가 없고, 모든 요구는 묵살된다. 재판 과정이 어이가 없고, 증거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판사들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교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사건의 전모를 밝히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는 판사와 검사의 위선이 더 크게 잘못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실체적 진실이나 정의의 요구를 묵살하고, 피고인의 인격과 권리를 철저히 무시해야 할 만큼 법조계의 위신은 그렇게 중요한 가치인가? 이런 극도의 권위주의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왜 대한민국 법조계는 이토록 권위적이고, 또 이렇게 경직되어 있는 것일까?

무릇 권위란 타인이 부여하는 것이지 자신이 직접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능력과 인격을 갖춘 자에게는 원하지 않아도 권위가 따라오고, 이 중 하나가 부족하거나 둘 다 없는 경우에는 아무리 찾아도 권위가 따라오지 않는다.

눈물겨운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목마름

법은 국회에서 만들고, 집행은 행정부가, 해석과 판단은 사법부가 하지만 법의 적용 대상은 일반 국민이다. 따라서 법은 일반 국민을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다. 사법부는 좋든 싫든 법치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국민이 읽고 이해하는 법과 법원이 보는 법이 다르면 곤란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법을 부러뜨리면 더 큰 문제다. 법이 부러지면 사건 당사자, 나아가 국민이 화살을 맞게 된다.

대선이 있는 올해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 온 국민이 주목하는 이유는 그 영화가 시사하는 방점이 ‘정의의 회복’에 있기 때문이다. 만화 세일러문에서 주인공 세일러문이 불의를 향해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고 외치는 것처럼 감옥 안에서도 법이 법답기를, 정의가 정의답기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주인공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의 ‘정의에 대한 목마름’, 눈물겹다.

[대동문화 70호, 2012년 5. 6월호]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주필·이사  nam48@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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