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희 작가(우)와 남편인 앙드레 오(좌)가 갤러리 충장22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했다.

계엄령으로 온 나라가 군대의 나라가 된 뒤 국민을 향해 총칼을 겨누어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현장에서 바로 다음 날 ‘그것을 보게 된 것이 태어나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다. 진도 여자아이, 양림동 소녀로 통하는 임영희 작가다.

임영희 작가는 전남 진도 출신이다. 초등학교 이후 광주 수피아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문학도를 꿈꿨다. 성인이 되어 광주현대문화연구소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전남 최초의 독립여성단체 ‘송백회’를 창립했고, 1980년 5월, 시민군으로 참여해 항쟁했다. 극단 ‘광대’의 단원이자 ‘갈릴리’의 기획자로서 5.18항쟁을 알리는 연극 활동에 참여하며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해왔다. 50대에 들어선 어느 날 급성 뇌졸중으로 신체장애를 얻었다. 이후 화순으로 귀촌하여 인생을 돌아보며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자전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그림들로 애니메이션 영화 ‘양림동 소녀’를 연출했다. 동화책 후속작으로 ‘녹색소년 장형두’를 작업하기도 했다.

올해 5월 16일, 출간된 임영희 작가의 그림책 '양림동 소녀'

‘양림동 소녀’는 서울독립영화제, 광주여성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광주독림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 초대되었고,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도 방영되었다. 2023년 한 해 제15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대상, 제10회 춘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심사위원상, 제24회 가치봄영화제 인권상, 제24회 제주국제장애인인권영화제 대상을 수상했고, 제44회 청룡영화상 청정원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임영희 작가의 남편은 앙드레 오로 통한다. 임 작가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2년 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예전의 옷과 신발은 다시는 입고 신을 수 없었다. 새로 사는 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그때 앙드레 오는 미싱을 구매하고 양재학원에 등록을 한다. 아내를 위해 옷을 만들어 입히겠다는 것이다. 옷을 직접 재봉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큰 주머니다. 생활에 모든 편리성을 감안하여 생각해 낸 것이다. 그리고 3년, 앙드레 오가 한땀 한땀 서툰 솜씨로 옷을 만들어 입히는 순간 모두 그에게도 임 작가에게도 너무도 큰 기쁨이고 감동이었다. 5% 부족한 옷들은 유머와 위트로 빈공간을 채워갔다.

임 작가는 충장로 패션 스타일을 동경하는 문학소녀였다. 그렇게 하여 영화와 책 ‘양림동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임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디어도 옷으로 얻었다. 옷이 주는 감정은 마라톤 선수의 출발점과도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드디어 충장로로 돌아왔다. 80년 오월의 젊은 열정들이 사랑과 눈물을 나눴던 그 함성의 거리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10월 10일부터 16일까지 앙드레 오의 작품 전시회가 충장22 갤러리에서 열렸다.

<양림동 소녀 & 앙드레 오>의 패션전시회가 지난 10월 10일부터 10월 16일까지 갤러리 충장22에서 열렸다. 가을바람이 곱게 부는 날, 앙드레 오의 손끝에서 노년의 런웨이를 한 것이다. 옷은 하나의 의식이라고 여긴다. 뜨겁게 살아 있음도 느낀다. 앙드레 오가 양동시장과 충장로에서 뗀 옷감으로 만든 임 작가만의 옷,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 그녀가 입고 원하는 삶을 패션한 것이다.

임 작가는 올해 5월 26일, 그림과 글을 함께 넣은 책을 발간했다. ‘양림동 소녀’이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도서출판 오월의 봄’에서 인쇄했다. 씨앗을 품었던 시간과 거름으로 살아내는 틈새 속에서 서투른 그림이 시작됐다. 뇌졸중으로 불편한 몸은 코로나 시대를 보내다 아들의 권유로 왼손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된다. 먼저 자신을 그려보기로 했다. 자라왔던 순간순간을 기억하여 틈새를 찾고, 긴 숨 속에 만난 자신의 자존감을 만났다. 크레파스와 사인펜은 서투른 왼손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즐거움을 선사했다. 뻣뻣했던 자신을 양림동 소녀로 탄생시켰다. 어릴 적 운림산방의 소풍길, 양림동 골목길, 광주의 충장로, 광주극장, 보프룩 카페, 오월 분수대, 시민광장, 병원 등등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 하나하나를 그려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양림동 소녀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보배의 섬을 떠나오다, 제2부는 양림동 소녀, 제3부는 광주 오월공동체, 제4부는 단비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등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나온 시간을 조목조목 그림과 함께 서술했다. 총 160페이지로 구성됐다.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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