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종-무형문화제1

장인의 아픔, 연장 안에 담기다

형제들이 많아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시절이 그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경제에 대한 일부 책임을 맡아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명령이 내려졌다. 그 시절엔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는 늘 긍정의 사고를 했다. 무엇을 배울까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어느 날 ‘목수를 하면 흰쌀밥 먹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보리밥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흰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13살 소년 조기종은 아버지 따라 목공소에 들어갔다.

겨우 13살인 어린아이가 받아들기에 일이 많이 버거웠다. 목공소 주인은 좀 더 크면 다시 오라고 했다.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다 하겠다고 통사정을 했다. 주인은 시험 삼아 어른도 들기 힘든 무거운 쇳덩이를 들게 했다. 어린 그는 거짓말처럼 쇳덩이를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목수, 그 고난의 이름

목수의 길은 험난했다. 어렸던 그는 일을 하면서도 급료조차 받지 못했다. 끼니를 모두 스스로 해결했고, 지독하게 외로운 날들을 보냈다. 그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요. 군대 훈련소보다 더 험했어요. 얻어터지고 잠자다가도 심부름 시키면 제 빨리 뛰어나가야 했어요. 기술을 빨리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쉽게 가르쳐 주지 않아요. 다행이 그곳은 야간 근무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혼자 시간되면 몰래 기술을 연습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그는 마음이 바빠졌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고, 좀 더 배우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스승이 술 먹고 나오지 않는 날에는 혼자 작업을 했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실수도 많았고, 많이 얻어터지기도 했다.

어느 날 스승은 흠 잡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그의 작품을 만났다. 스승이 그에게 믿고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는 남들이 족히 넉 달은 걸리는 일은 두 달 만에 끝냈다. 그는 여러 목공소에서 탐을 내는 소년 목수가 되었다. 돈을 많이 주겠다는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처음 자신을 받아준 스승을 배신할 수 없었다. 끝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어렸지만 의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꾸준히 한 곳에서 한 스승에게 배운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로지 모과나무만 고집

스승은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나를 보며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졌죠.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열여덟 살이 되니 스승님이 놓아주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생각 보다 빠른 독립이었고, 남들은 생각할 수 없는 엄청 빠른 시간이었어요.”

18세, 그 무렵 그에게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도 찾아왔다. 재료비가 많이 좀 들더라도 그는 소목장이 되고 싶었다. ‘화류소목장’, 그것이 그에게 일생의 업으로 다가왔다. 광주에서 터를 잡고 성실함과 의지로 버텼다. 사실 빚도 많이 늘었다.

소목장(小木匠)은 건축을 주로 하는 대목장(大木匠)과 대칭되는 말이다. 화류(樺榴)는 모과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고급가구 재료다. 조선 전기까지 목가구는 주로 왕실이나 상류층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고 종류도 많아져 지역적인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인정된 조기종 씨는 그만의 독특한 특징이 스민 가구를 만든다. 오로지 모과나무만을 고집했고, 제작기법은 통가구에 연귀짜임의 기법을 사용한다. 원목의 사용에서부터 끝마무리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정이 전통기법에 충실하다. 가구에 만들 때 그는 풀칠이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가구를 장식할 때 사용되는 장석과 연장도 자체 개발해 사용했다. 마무리 단계에서 전통 목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구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그는 말한다. “전통은 오래된 해묵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는 것이다. 옛 전통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현 세대를 살아가는 장인답게 현대의 모습을 반영할 때 진정한 문화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연장에 이름을 주고 싶다”

그의 작업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무냄새가 은은하게 새어나왔다. 나무의 향이 깊다. 벽면에 걸린 300여 가지의 연장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목수의 생명은 연장이다. 연장을 사고 팔 수 없어서 각자의 연장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다. ‘갈아 쓰는 톱’과 ‘내닫이’는 하루 3개 정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쇠로 쇠를 밀어야 하기에 많이 시간을 필요로 하고 힘도 많이 든다. 이 톱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는 연장을 스스로 만들어 제작했다. 40년 전에 쓰던 내닫이(톱)는 그가 만든 것 중 제일 오래된 연장이다. 명인을 만들어낸 위대한 물건 중 하나이기도 한다. “목수들에게는 연장이 제일 중요합니다. 내 몸과 손에 잘 맞아야 좋은 작품이 완성 됩니다. 저는 연장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사람도 이름이 있듯이 연장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혼자 고민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도 청해 봤어요.”

사람들은 연장 따위에 무슨 이름이 필요하냐는 반응이었다. 지금도 목수들은 모든 연장을 사용할 때 일본어를 많이 사용한다. 큰 전시회를 가질 때는 부끄러운 일이 된다.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그는 제작된 연장에 순수 우리 이름을 달아주고 싶어 한다. 그의 마음이 무겁고 크다.

“자기 이름 석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문화재를 만들었어요. 장인들의 공이 크단 말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재급이 되면 연구비를 지원해줍니다. 당장 많은 것은 바라지 않아요. 연장을 만들 때 시비나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추사선생을 존경하고 있다.

“선생은 글을 쓰기 위해서 붓을 직접 만들어 작업을 했어요. 그만큼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연장 이름을 달아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려요. 작품 만드는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훌륭하신 학자들의 도움을 당장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좋은 연장 하나, 그것이 목수의 생명이다. 그만큼 목수들만의 용어가 필요하다. 목수들의 작품이 세계로 나가는 시대에 우리 언어로 만들어진 연장의 이름이 없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목수들이 사용하는 ‘짜맞춤기법’은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어요. 세계에 알릴 우리 목수들의 연장에 기본적으로 순수 우리나라 이름이 달아져야 해요.”

오래된 모과나무 안에 꽃이 환하게 피었다. 조기종, 그가 마음으로 웃는다. 재료만 있으면 죽는 순간까지 소목장으로 살고 싶다. 모과나무를 구하는 일이 워낙 돈이 많이 들어 고민이 깊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나무는 오래 두면 숙성이 된다. 그 전까지 나무는 트집을 부린다. 오래 둘수록 트집을 부리지 않는다. 제 속으로 단단해지는 시간을 거치는 것이다. 틈이 많은 세상이다. 이 우주는 언제쯤 숙성될까?

[대동문화67호, 2011년 11, 12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