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문화수도’ 관련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화의 소비자인 ‘지역주민’, ‘시민’이 배제됨으로써 왜곡되고 기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문화수도 사업이 종국에는 ‘건물 하나 짓고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여론도 그 같은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문화예술은 공공의 자산

이는 근본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나 자치단체 등의 공적 지원 내지 개입이 바람직한가, 문화예술의 주체는 누구인가, 문화예술에 시민의 참여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합리적인 근거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물론 2차대전 이전에도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지원이 실시된 나라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문화예술 영역에 직접 개입하여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정책이 보편화한 것은 2차대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거의 모든 산업국가에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2차대전 이후 보편화된 정부 지원은 그 후에도 다소 축소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지원이 지속적인 사업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게 됐다. 서구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검토한 대표적인 사람이 보몰과 보웬이다. 이들은 1966년 쓴 <무대예술, 예술과 경제의 딜레마>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고 문화예술은 본래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기적으로 정부 지원이 극적인 성장을 보인 때와 궤를 같이한다.

1992년 이 책이 소개된 후 일본에서도 이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술은 그 자체가 둘도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 공적인 재산이며 사회전체가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며, 보호하고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사회전체는 중앙과 지방정부(공공), 민간(기업, 시민) 모두를 포함한다. 나아가 민간의 지원이 약하거나 편중된 경우에 공공적인 의사의 대표자격인 정부나 준정부 단체가 이를 보호하고 보강하거나 지원해야 한다는 문화예술계의 논리가 공급측의 요청 논리로 차츰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홍익 서울대 교수가 1998년에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한 적이 있다. 정교수는 당시 “종래의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사고를 떨쳐버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체계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진로를 모색하고 그것을 평가하는 준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 문화수도를 둘러싼 논란도 바로 이러한 맥락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예술에 대해 지원해야 한다고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개입을 반대하는 주장에는 예술지상주의, 순수예술론으로 이는 자유주의 전통을 갖는 자본주의국가의 지배적인 문화행정관이다.

간섭과 지원의 딜레마 사이에서

이러한 반대주장에 대해 정홍익 교수는 1)역진적 소득재분배, 2)정부의 통제,3)가치재로서 낮은 우선순위, 4)공공재적 특성에 대한 의문이라는 네 가지로 유형화하였다. 역진적 소득재분배란 가장 실증적인 근거가 확실한 것으로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저소득층에 혜택이 가기보다는 오히려 중산층 이상 상위계층을 지원하는 결과가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통제는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면 동시에 정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문화예술자체를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의견이다. 가치재로서 낮은 우선순위라는 것은 문화예술의 가치재적 특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 소득보장, 환경보존, 범죄예방 등 정부가 국민생활을 위해 해야 할 산적한 여러 과제가 있는데 이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문화예술에 대해서까지 지원을 해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또 독일 나치가 문화예술에 개입하여 전체주의를 옹호하는데 이용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만큼 국가의 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은 현시대보다는 그 시대를 앞서가는 것인 만큼 반체제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가 지원을 이유로 그러한 반체제성을 제거한다면 문화예술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지원은 확대되고 있으며 그 논리도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서구에서는 보몰과 보엔은 문화예술은 본래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을 당연시한 고전적인 주장이다. ‘예술활동의 본래적 가치’의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예술에서 유래하는 ‘일반적 편익’을 1)무대예술이 국가에 가져다주는 위신, 2)문화활동이 주변의 비즈니스에 가져다주는 편익, 3)미래 세대에 대한 이익, 4)교육적 공헌을 들고 있다.

다음으로 하일브런과 그레이(Heil, J. & Gray, C.M.)은 예술문화에 대한 공적지원에 대해 1)미래세대에 대한 유증, 2)국가의 아이덴티티 또는 위신, 3)지역경제에 대한 공헌, 4)자유로운 교육에 대한 공헌, 5)예술에 대한 참가에 의한 사회진보, 6)예술적인 혁신에 의한 편익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홍익 교수가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 유형으로 공공재적 측면과 가치재적 측면 두 가지로 들고 그 논거로 1)예술향수권의 보장, 2)시장기능의 보완, 3)지역경제에 기여, 4)예술교육에 대한 투자, 5)공연예술의 비경제성을 들고 있다.

이러한 논거를 검토해볼 때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지원은 점점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남는다. 첫째, 여기서 말하는 문화예술에는 상업적으로 충분히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하는가, 순수 문화예술만을 말하는 것인가, 나아가 전문적인 예술 활동만 포함하는가, 아니면 아마추어의 예술 활동도 지원대상이 되는가, 지원 대상이 되는 예술의 내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문화 지원 정당성 확보가 관건

둘째로 정부의 지원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직접지원인가, 세제 등에 의한 간접지원인가, 아니면 제3의 기구에 의한 지원인가.

셋째로 무엇보다 이에 대한 것들을 누가 평가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시책사업으로 추진하는 사업일수록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이 정부주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주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직접 지원을 반대하고 민간중심의 제3의 기구에 의한 간접지원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면….

또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한다면 어떠한 부문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국가가 지원하는데 지방정부가 또다시 지원해야 하는 논거가 있어야 한다. 지방분권과 관련, 문화예술의 보호육성이 중앙정부의 일인가, 지방정부의 일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화예술에 대한 공적인 지원에 대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으로 생각된다. 문화예술이 점점 중요해지고 국가의 지원도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동문화 31호, 2004년 가을호]

정유철(전남일보 경제부 차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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