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무란 신라의 화랑 황창랑이 백제의 왕을 시해하려고 칼춤을 춘 것이 그 시초다.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엔 궁중과 지방 관아의 향연에 반드시 등장하는 춤으로 꼽혀왔다. 검무는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발달했다. 이북 지역에는 평양 검무와 해주 검무가 유명하고, 서울 검무, 경남의 진주와 통영 검무 그리고 호남 검무 등이 있다.

검무의 직접적 기원은 신라 황창랑이다. 신라의 소년이었던 그는 백제에 들어가 칼춤으로 이름을 낸 뒤에 칼춤으로 백제왕을 죽이려다 오히려 죽음을 당했다. 뒤에 황창랑의 탈을 쓰고 칼을 들고 춤을 추며 황창랑의 고사를 연출한 것이 검무의 시작이다.

다만 고구려 벽화에도 칼을 들고 춤을 추는 그림이 보인다. 우리나라 칼춤은 상고시대 전투 무용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칼을 들고 추는 춤에는 공막무(公莫舞), 검기무(劍器舞), 항장무(項莊舞) 등이 있었다. 검무는 공중과 지방 관아의 연례의식에서 행해졌고 또 민간의 향연에서도 추어졌을 만큼 보편적인 춤의 하나였다.

춤사위로 호남 검무 존재를 알리다

1998년 ‘호남 검무’가 처음으로 전국 무대에 섰다. ‘진주 검무’가 일찍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널리 알려진 반면 ‘호남 검무’는 이 지역에서만 명맥을 잇고 있는 정도였다. 이 ‘호남 검무’가 1998년 10월 밀양에서 열리는 제 39회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 광주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다.

호남의 명무 고 한진옥 옹(1924~1990년)으로부터 호남 검무를 전수받은 김자연은 늘 그날을 생각한다. 간 한삼 자락을 이리 저리 뻗치며 검을 다스릴 때면 검과 그가 어느새 하나가 된다. 자리바꿈과 방석돌이가 끝나면 사뿐히 앉아 칼을 짚고 일어섬과 동시에 가락은 점점 빨라진다. 본격적인 칼사위 동작이다. 척, 착착, 척, 착착착, 칼은 박진감 있게 돌아가고 춤사위에도 신명이 실린다. 전립을 눌러쓴 무희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히는 것도 이 맘 때쯤이다.

“호남 검무는 진주 검무와 비슷하지만 춤사위가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1ｍ47㎝에 이르는 기다란 한삼춤이 곁들여지는 것은 호남 검무만의 특징이지요. 한삼춤은 무대를 꽉 매우면서 화려함이 큽니다. 다른 지역의 검무에 비해 섬세한 기교가 많은 것도 호남 검무를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지요.”

그의 명성은 그림자처럼 따르고 배웠던 스승의 몫이 크다. 그는 늘 스승의 예술 정신과 철학을 가슴에 새기며 춤사위를 엮어냈다. 춤사위뿐만 아니라 고결하고 곧은 스승의 정신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단지 스승을 흉내 냈을 뿐인데 그는 지금 알아주는 검무 명인이 됐다.

김자연은 뒤늦게나마 스승이 춤이 자신의 춤사위로 조명 받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는 스승이 했던 그대로 재현했다. 10년 동안 스승을 그림자처럼 따르며 춤을 익혔던 그였다. 춤사위며 가락이며 장단 모두가 흥겹다. 스승의 춤이 그랬다. 춤사위는 물론 음악도 스승의 것과 한 치도 틀림없이 준비했다. 호남 검무에 따르는 삼현육각 그대로를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그가 스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3년이다. 집안의 반대로 춤에 대한 짝사랑만을 해오던 그가 부친으로부터 춤 사면령을 받고부터다. 당시 시립국악원에 재직하고 있던 한옹은 꼭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을 하루같이 호남검무는 물론 승무 살풀이 등 전통 무용을 공부하고 물려 받았다.

“1998년 첫 호남 검무를 첫 선보일 때나 지금이나 가슴이 설레는 한편 마음이 무겁습니다. 혹여 스승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색동저고리에 홍치마, 거기에 전대와 전립을 한 채 스승의 춤사위를 재현해 내고 있는 사람. 그의 칼춤 안에는 스승과 그가 함께 있다. 호남 검무의 올바른 위상을 되찾고 계승하려는 스승의 정신이 있다.

세상을 호령했던 춤꾼 양학 선생의 딸

어머니 양학 씨로부터 선천적 춤꾼 기질을 물려받고 고 한진옥 선생으로부터 정신을 배운 김자연은 지금도 북과 장구채를 놓지 않는다. 연습실 마룻바닥이 닳아져라 춤을 춰대는 한국무용가 김자연은 춤을 출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비록 어머니에게서 춤을 배우진 않았지만 그에게 어머니는 우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춤 세계는 그가 점령해야 할 고지로 저만치에 남아 있다.

원로 무용인이라면 누구나 익히 아는 양학 선생. 단아하고 품위 있는 춤꾼으로 이름을 떨쳤던 어머니는 정작 딸이 춤판으로 들어서는 걸 극구 반대했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무용을 접한 그는 어머니 몰래 무용복을 챙겨 배우러 다니곤 했다. 춤판을 기웃거리는 딸이 안타까워 그의 아버지가 ‘무용 사면령’을 내렸다. 그의 나이 스물넷이었다. 이때도 어머니는 짐짓 모른 채 할뿐 내놓고 허락하진 않았다. 어머니가 그렇듯 반가워하지 않았던 이유를 춤꾼이 된 지금은 알 것도 같다. 예술의 길은 험난하고 아프다.

거기에다 이왕 시작했을 땐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자기 채찍이 긴장을 늦추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 양학 씨는 지금도 춤은 그렇게 추는 것이 아니라며 딸에게 짐스런 말을 내던져 놓는다.

춤꾼 양학 씨는 완고한 집안의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6.25때 몰살당한 대학 나온 세 오빠들이 집안 망신시킨다며 동생이 무용하는 것을 반대 했다. 16세 때 예술을 위해 가족들과 생이별을 감행했다. 집과 인연을 끊고 남의 집 수양딸로 들어가 권번 수업을 받았다. 소리, 악기, 춤 등 재능이 출중해 권번에서도 장이 되어 동기들을 이끌었다.

인간문화재 이매방 씨와 이대조 선생이 문하에서 함께 배워 지금도 절친한 사이다. 당시 선배였던 양씨를 누나라 부르며 따랐던 이 씨에게 승무, 살풀이 등의 춤사위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상을 비롯해 온갖 대회를 휩쓸었던 양 씨는 23세 때 남편을 만나 1남 3녀를 둔 후로도 춤판을 누볐다. 한창 이름을 날리던 시절 남농 선생이 마치 학처럼 고고하고 정결한 춤을 춘다 해서 호를 학이라 지워줬다.

김자연을 뱃속에 담고 있던 9개월 만삭 때에도 춤을 췄다는 어머니다. 세 살 때 연수생에게 춤을 가르치노라면 뒤에서 따라하곤 해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춤꾼의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모양이지만 물려주긴 싫었다고 말하는 그의 어머니는 뒷바라지를 못해줘 가슴 아프다고 회한에 젖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의 계보를 잇지는 못했지만 어머니 못지않은 춤꾼을 꿈꾸는 김자연. 그의 소원은 어머니에게 단 한 말을 듣는 것이다. 그 말은 이러하다. “바로 그거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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