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술 평론가인 도그 스튜버는 도예가 송팔영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2㎏의 흙을 빚어 두 개의 주병과 큰 접시를 만들어 새로운 문하생에게 그의 작업을 보여준다. 완벽한 모양을 갖춘 이 세 점의 도자기들은 정확하게 정해진 양의 흙으로만 빚어졌으며 자연의 위대함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 ‘목어’는 수도승에게는 잘 알려진 부처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벽에 설치될 변형된 짱뚱어는 단순히 창의적인 우월감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영혼으로 들어가는 기억될 만한 시각 공간을 창조하여 작품의 소재로 활용할 줄 아는 그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가 처음 물레를 돌렸던 1977년 봄, 그는 삶의 길을 얻었다. 조기정의 무등요에 일본 사쓰마 도기의 14대 심수관이 찾아왔다. 그의 작업을 유심히 지켜보던 심수관이 말했다.

“뛰어난 그릇입니다.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것을 보니 기본적인 미술 공부가 되어있군요. 당신은 전통 도예보다 현대 도예가 더 어울릴 듯합니다. 도전해 보세요.”

어쩌면 송팔영은 그 힘으로 지금까지 뚜벅뚜벅 걸어왔고, 그 시간 동안 물레에서 결코 손을 떼지 못했다.

어깨에 힘을 빼라, 인생에서도 작품에서도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그는 낙안읍성의 북문 밖 화원마을 금전산 언저리에 널찍한 공방터를 마련했다. 공방을 짓고 가마를 설치하기까지 꿈이 함께 했다. 그 시절의 작품들은 동화적이고 목가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떼를 몰고 귀향하는 사람을 담아낸 ‘황소’ 연작과 물놀이를 하거나 구름을 타고 날아오르는 ‘동자’ 시리즈는 그의 성격과 똑 닮아 있었다. 그는 그만큼 순진무구했다.

화가가 꿈이었던 그가 평면 회화의 양식을 차용하면서 그려낸 도판화는 자연이거나 사물을 우화적으로 묘사해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제 송팔영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낙안읍성이 아닌 능주로 발길을 옮긴다.

“이곳에 온지 1년쯤 됐어요. 아직까지는 아무 작업도 할 수가 없어요. 사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이 저에겐 좀 쉽지 않아요. 이제는 정리가 되어가는 시점이라 슬슬 움직여야지요.”

언제부터인지 그는 무엇을 시작하는 시점이 오면 힘부터 뺀다. 힘이 들어가면 어김없이 리듬이 깨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모든 작업이 헛것이 된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먼저 힘을 빼고 많이 생각하면서 앞으로 시작할 일들이 손에 익을 때까지 천천히 기다린다.

“낙안과 광주의 공방을 오르내리면서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강의하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가 있었습니다. 순수 작업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으니 그렇게 살았어요. 내 자신이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무엇에 이끌려가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전라도 말로 ‘어만데’ 힘을 쓴 거죠. 물론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되었지만요. 그런데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이 길을 걸어온 지 40년 넘어 이제야 비우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해 졌지요.”

그는 물레 앞에 다시 앉기까지 많이 시간이 걸리지만 조바심 내지 않는다. 사실 그 빈 시간들은 비어 있지 않다. 다음 작업을 위해 생각을 모으는 시간들로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예술 작업은 늘 그렇다. 순간에 오는 것들이 많다. 빈 시간으로 보이는 날들이 사실은 순간의 영감을 이끌어낸다.

“쉽게 만들어지는 건 없습니다. 특히 이제 예술도 대중과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나만의 작업은 그냥 무제인 것이지요. 처음엔 그런 상황들이 납득하기도 싫었고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타협을 하게 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쉬어진 작업은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나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요.”

흙과 친해지는 도예의 기본, 물레 차기

그는 흙을 다루는 법도가 장인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흙과 친해지려면 밟아도 보고 주물러도 봐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급함을 다스린다. 그는 또 함부로 물레 앞에 앉는 것을 싫어한다.

미술대학에 다니다가 내적 갈등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가 도예가의 길로 앞날을 정하고 맨 처음 목표한 것은 옹기 가마의 물레 대장이었다. 교육자였던 부친의 가르침이 컸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려면 가장 기본부터, 밑바닥부터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야 했다. 도예가가 되기 전에 도공이 되는 길 위로 한 걸음씩 옮겨갔다.

“도예를 시작하고 보니 의외로 물레에 약한 도예가가 많았어요. 전문적인 물레꾼을 두고 물레를 차게 해서 자기 작품이라고 내놓는 분들도 많았어요. 도예의 기본은 물레 차기 아닌가요. 도자기를 하려면 물레만큼은 옹기 가마의 물레 대장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공방에서 화두로 삼은 것은 자연과 조화 되는 작업이었다. 흙과 유약의 선택 단계부터 친환경적이면서도 생태에 부합되는, 그런 작품에 몰두한 것이다. 감각적이고 날카로운 도회적 조형미를 탈피해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자연의 형상으로 귀의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송팔영은 물레에 앉는다. 다시 물레 앞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며 주문을 외운다. ‘물레와 흙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주문을 외우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다.

모든 도예가들은 상처 위에서 살아간다. 송팔영은 그 상처들을 끌어내 이글거리는 불구덩이로 보냈다. 다시 밤을 지새우고 물레를 돌렸다. 가마 속에서 상처가 익어갔다. 잊어버리기 위해 또는 지우기 위해 물레와의 싸움은 더욱 치열했다. 아픔으로 빚어 더욱 옹골차게 빛나는 그의 작품들, 결국 상처가 그를 살렸다.

대동문화 84호 [2014 9,10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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