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굿판을 보고 춤추고, 노래하고, 풍장을 쳤던 우연의 순간들이 어느 덧 60년의 세월이 지나 이곳까지 오는 필연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고인이 되신 남도 명인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우도농악과 김동언류 설장구를 있게 해주신 전국 각지 제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풍물인생 60년, 우도농악 보유자이고 전남 무형문화재 제17호인 김동언 선생의 힘 있는 말이다.

선생은 광산 김씨의 손으로 1940년 전남 담양군 봉산면 와우리에서 태어났다. 5살 때 독자였던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예술의 끼는 타고 난다고 했던가? 예능에 남달랐던 선생은 2학년 때 콩쿠르에서 ‘고드름’이란 노래를 불러 주변의 칭찬을 받았다.

비록 상은 못 탔지만 주변으로부터 그에 대한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한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전쟁과 가난의 굴레가 너무도 커 대회를 나가면서도 제대로 갖추어진 옷 하나 없어 남의 옷을 빌려 입기 일쑤였다.

학교에서 운동회나 체육대회가 있으면 어김없이 그는 앞에 나가 응원단장을 맡았다. 삼삼칠박수가 그를 즐겁게 만든다. 학교를 오고가는 길엔 삼삼칠박수를 연습하며 걷는 것이 일상이었다.

선생의 몸속을 흐르는 예능의 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월 대보름, 마을에서는 굿 소리나 마당 밟기 등의 풍물을 즐겼는데 어린 그가 작은북을 쳤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2대 독자였던 선생이었기에 어머니의 기대와 사랑은 남달랐다. 농사일을 하는 어린 아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전국 4H대회에서 당당히 ‘대상’

농사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노랫가락과 풍물이 손발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맡고 있던 작은북, 때로는 소고가 그의 전부였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1957~8년도에 전라남도 농촌진흥원(현, 상록회관)에서 4H전국대회가 열렸다. 선생이 소속된 농악대표팀이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덤으로 송아지도 들어왔다. 전국 각 극장의 ‘대한늬우스’에서는 톱뉴스로 농악과 대상을 수상하는 장면이 퍼지기 시작했다.

기쁨보다도 장래가 걱정된 어머니는 그를 불러 놓고 조용히 타이른다. “아들아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풍물을 그만 두었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들은 선생은 버려진 자식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농사일에 전념하며 몇 해를 보냈다.

당시의 풍물은 굿을 하는 사람의 인식이 강하여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몸속을 뒤흔드는 끼를 몇 해 동안 가두어 놓았으니 얼마나 속이 탔을까? 9월 보리를 갈기 위해 퇴비를 내는데 아스라이 들려오는 멋진 풍물가락이 일손을 붙잡았다.

퇴비가 든 지게를 버리고 소리가 나는 봉산면 쌍교방향으로 뛰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다짜고짜 장구 한 번 치겠노라고 떼를 써서 장구채를 낚아챈다. 그때 장구채를 건네주던 그가 선생의 인생을 바꾼 최막동 선생이었다.

‘뿌리를 찾는 고향길’이라는 씨름판의 식전행사로 풍물을 즐기던 그들에게 김동언 선생이 뛰어든 것이다. 그날 꽹과리를 치던 이주환 선생도 알게 되었다.

당시 최막동 선생은 광주 남구 방림동에 위치한 판자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최막동 선생의 장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종합 예술이었다. 몸매, 발매, 손매를 강조하시던 최 선생은 특히 발매는 꿩의 발처럼 사뿐거리는 아름다움을 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사람이다.

‘호남 창극단’ 최막동 선생 만나

선생은 막무가내로 장구를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최막동 선생 역시 4H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김동언 선생을 알고 있던 터였다. 주소를 주면서 “돈은 필요 없고 먹을 쌀만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 그들과 활동을 했던 곳이 <호남창극단>이었다. 창극단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인간의 안녕을 기원하는 농악을 위주로 활동을 했다. 판 굿만이 아니고 성주풀이나 설 담, 장독대 장맛, 부엌의 조앙신 등을 달래는 음을 연출한다. 사설은 세시풍속을 읊는다.

최막동 선생을 비롯하여 이주완, 박진숙, 강성수, 임재식 선생 틈에 끼여 막둥이로 약 4년 동안 그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19세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2개월 후 집안에서는 2대 독자라는 핑계로 한동네 사는 여인과 결혼을 시켰다.

결혼 후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농사는 농사대로 지으면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나무를 이용한 문발을 만들어 팔았다. 여름 직전 보릿고개 때 만들어 파는 제품이기에 만들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큰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생활고를 해결 해 나갔다.

그렇게 농악을 떠나 맘 잡고 사는 선생에게 장구의 대가로 알려진 김종혜(작고. 광주 무형문화재 8호) 선생이 찾아왔다. “그렇게 좋은 기술을 놔두고 왜 썩히느냐” “함께 가자”하여 또 다시 따라나섰다.

우도농악인 ‘광산농악’ 먼저 시작

먼저 접한 것은 호남의 우도농악인 광산농악(당시는 마륵농악)이었다. 호남농악(湖南農樂)에는 두 파가 있다. 서쪽에 위치한 평야지대의 농악을 호남우도농악(湖南右道農樂)이라 하고 동쪽에 위치한 비교적 산악지대의 농악을 호남좌도농악(湖南左道農樂)이라 한다.

우도농악은 익산, 부안, 고창, 정읍 등 전북지방과 장성, 영광, 나주, 광주, 함평 등 전남지방에서 전승되는 농악이다. 또 좌도농악은 진안, 무주, 장수, 남원, 순창 등 전북지방과 곡성, 구례, 화순, 보성 등 전남지방에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들 농악은 충청도나 경상도에 인접한 지역의 농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호남농악에는 다른 농악이 있다. 신청농악(神廳農樂)이라 일컫는 진도의 농악과, 해남 일대에 잔존해 있는 군고농악(軍鼓農樂), 여천지방에 행해지는 가장농악(假裝農樂)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광산농악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지는 못했다. 마륵농악이나 소촌농악 소속으로 대회에 나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생활하던 중 김오채 선생을 만났다. 김오채 선생은 영광농악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김오채 선생은 설장구의 대가로 국내에선 이름 있는 사람이었다. 그분을 알면서 장단과 멋을 익혔고 품위를 배웠지만 기대한 만큼 기술을 전수 받지는 못했다.

후보 3년 만에 문화재 지정

1988년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 이듬해 김병조 사회로 진행했던 전주 대사습놀이에서 장려상을 받으면서 장구의 기능을 인정받게 된다. 1993년 전남 무형문화재 제17호 후보가 되었다. 3년 뒤 선생은 전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설장구의 대가로 부상한다.

김동언류 설장구, 설장구는 풍물패의 구성원 중 장구 치배(연주자)의 리더를 일컫는 말이다. 개인놀이 또는 장구 놀음을 지칭하기도 한다. 김동언류 설장구는 명인 故김오채 선생의 설장구에 그 뿌리가 있다.

김동언 선생은 김동언류의 농악을 정착 시키면서 장구를 비롯하여 들소리(들노래), 광광술래, 상여소리 등도 함께 정리해 놓았다. 들소리는 용전의 너른 들녘에서 일에 지친 농부들의 푸념을 창으로 정리한 소리이다. 광광(光光)술래는 물을 일컫는 강강술래와는 달리 내륙의 빛을 희망의 소리로 정리하여 빛 광(光)을 썼다. 또 상여소리는 슬픈 정서를 노래로 만들어 한을 달래는 서편제 같은 소리이다.

이렇게 정리한 농악이 우도농악 중에서도 김동언류다.

김동언 선생은 풍물에 대하여 “자연이고 사계절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풍물도 변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젊은 시대를 풍미했던 농악을 두고 저물어가는 인생 앞에 힘 있고 젊은 농악이 자신을 따라 저물진 않을까하는 노파심이다.

선생은 문화재 지정 후 매달 받은 보전금을 꼬박꼬박 모아두었다. 자신이 평생 일군 돈과 그 돈을 합쳐 우도농악 보존회에 전부 투자하여 전승시키는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한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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