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체 찾기 어렵지만 몇 년 전까지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방이나 카페가 성행했었다. 보드 게임(board game)은 놀이판과 간단한 물리적인 도구로 진행하는 놀이를 말한다.

우리 전통놀이에도 보드 게임과 비슷한, 얼핏 보면 서양의 체스와 유사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쌍육놀이가 있다. 쌍육놀이는 두 사람 이상이 쌍육판 앞에 마주보고 앉아 편을 가르고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나오는 숫자만큼 말을 움직여 노는 놀이이다. 주사위의 가장 큰 숫자가 6이고 던졌을 때 두 개 모두 6이 나오면 이길 확률이 크므로 놀이의 이름을 쌍육(雙六)이라 지은 것이다.

기원전부터 시작된 쌍육의 역사

쌍육의 기원은 B.C 3천년 경까지 올라간다. 바빌로니아의 아브라함 성지에서 발견된 쌍육의 형태를 그 시작으로 보며, 그 이후 나일강변의 피라미드,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 시대의 여러 유적과 폼페이 유적 등지에서 놀이판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놀이가 동양으로 전해진 것은 2세기경 조위시대로 추정된다.

중국의 고문헌 『오잡조(五雜俎)』 의 「오주연문장전사고」 권 57에 쌍육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호국(胡國: 흉노족이 세운 나라)의 호왕(胡王)은 자신의 동생이 죄를 짓자 옥에 가두어 죽이려고 한다. 옥에 갇힌 동생은 ‘악삭(握槊)’이라는 놀이를 만들어 왕에게 바친다. ‘악삭’은 말이 홀로 있으면 상대편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하지만 두 개 이상이면 쉽게 먹히지 않으므로 이길 확률이 높은 놀이이다.

형에게 있어 동생인 자신이 언젠가는 꼭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동생의 의도를 알게 된 왕은 결국 동생을 풀어주었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호국(胡國)에서 만들어진 쌍육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가 삼국시대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쌍육

중국 당나라 학자 이연수(李延壽)가 편찬한 『북사(北史)』 권 94 「백제전(百濟傳)」을 보면 ‘백제에 투호(投壺) 저포(樗蒲) 농주(弄珠) 악삭(握槊) 등의 잡희(雜戱)가 있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악삭은 쌍육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백제시대에 쌍육놀이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악삭’은 다듬은 나무를 가리키는 ‘삭(槊)’과 ‘손에 쥔다’는 의미의 ‘악(握)’으로 ‘다듬은 나무를 손에 쥐고 논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악삭‘이라 부르다가 점차 놀이가 발달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쌍육’으로 불리게 되었다.

백제때 사용되던 쌍육이 전해 내려온 것은 없으나 같은 시기에 제작된 쌍육판이 일본의 정창원(正倉院)에 있어 흥미를 끈다. 이는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목화자단쌍육국(木畵紫檀雙六局)’이라 부른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6 ‘고율시(古律詩)’에 ‘옥국쟁쌍륙(玉局爭雙六; 옥으로 만든 판에서 쌍육을 친다)’이라는 시구(詩句)가 전해지고 있어 쌍육놀이가 고려시대에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옥으로 쌍육판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쌍육은 특정 계층의 호사스런 오락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조선 세종 때 쌍육에 얽힌 이야기 하나. 세종의 딸은 몸이 약하여 투병생활을 하였다. 아버지인 세종은 걱정이 되어 내관을 보내 수시로 공주의 건강상태를 아뢰도록 하였는데, 어느 날 그 내관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연유를 알아보니 공주에게 붙잡혀 쌍육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

조선왕조실록도 쌍육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조선중기까지는 놀이를 즐겼던 계층과 그것이 행해졌던 장소가 다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부원군(府院君), 빈(嬪)과 공주들, 형조판서 등 비교적 상류 계층이 즐겼던 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 풍속화가인 신윤복(申潤福)과 김득신(金得臣)의 그림을 보면 평범한 차림새의 여인과 선비가 쌍육을 두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조선후기로 가면서 이 놀이가 좀 더 다양한 계층으로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말의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화첩 ‘기산풍속화첩’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현재 독일 함부르크 인류학 박물관에서 소장)에 쌍육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20세기 초반까지도 계속 놀았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놀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쌍육을 놀기 위해서는 쌍육판, 주사위 두 개, 색이 구분되는 것으로 15개씩 총 서른 개의 말이 필요하다.

쌍육판을 말판이라 부르는데 가로 70~80cm, 세로 40cm 내외 크기의 직사각형이다. 테가 높게 둘러진 것이 일반적이나 테가 없거나 낮게 둘러진 쌍육판도 있다. 안에는 검은 선으로 밭(田) 또는 양(梁)이라 부르는 구획선을 그려 넣는다. 각 판마다 크기나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여섯 개의 밭을 상하, 좌․우가 대칭이 되도록 모두 네 군데에 그려 넣는 것은 같다. 그리고 좌우의 여섯 개의 밭 사이에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칸을 크게 그려 넣은 것도 있다.

앉은 자세에서 쌍육판을 바라볼 때 여섯 개의 밭이 좌우로 그려져 있으면 오른쪽 밭은 내육(內肉), 왼쪽 밭은 외육(外肉)이라 부른다. 즉, 앉아 있는 사람의 오른쪽 밭에 자신의 말을 넣어 이기게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색으로 각각 15개씩의 말을 준비한다. 말의 모양은 반구(半球)모양에 뾰족한 밭이 올라와 있는 형태이나 중국의 말은 우리나라 말에 비하여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말은 두 가지 색으로 채색하는데 상하(上下)의 색을 다르게 칠한다. 상하 두 색의 배치를 다르게 하여 상대편 말과 자기편 말을 구분한다. 색은 일반적으로 흑색과 백색을 사용하지만 홍색과 녹색을 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주사위가 두 개 준비되면 놀이를 시작할 수 있다.

쌍육의 종류와 놀이방법

쌍육놀이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참쌍육’인데 참쌍육의 ‘참’은 처음이란 뜻으로 ‘원놀이 방법’, ‘진짜 놀이’라는 뜻이다. 우선 흑과 백팀으로 나눈 다음 말을 배치하는데 맨 앞에는 두 개를, 5의 숫자 칸에는 3개, 6과 맨 끝에는 5개의 말을 배치한다. 말이 2개면 이대장, 3개는 삼장군, 5개는 오위군영을 상징한다. 흑팀은 오른쪽이 내집이고, 왼쪽이 외집인데 말은 상대편이 1에 있는 흑말 두 개와 다섯 개의 흑말, 그리고 3개의 흑말을 왼쪽으로 이동하여 모두 내집(오른쪽)으로 이동시킨다. 이동이 끝나면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숫자 자리에 있는 말을 빨리 밖으로 빼낸 사람이 이긴다.

말의 이동 방법은 한 칸에 말을 최대한 5개까지 놓을 수 있으며, 2개의 주사위를 던져서 4와 5가 나오면 말 한 개를 4칸과 5칸 혹은 둘을 합한 9칸을 이동할 수 있다. 만약에 같은 수, 예를 들어 5와 5가 나오면 두 개의 말을 동시에 5칸 이동시키거나 한 개의 말로 10칸을 갈 수 있다.

말을 이동하여 멈추는 곳에 상대방의 말이 2개 이상 놓여 있으면 그곳에는 놓을 수 없고, 상대방의 말이 한 개 놓여 있으면 그 말을 잡을 수 있다. 잡힌 말은 처음 밖에 놓았다가 순번이 되어 던져서 나온 숫자로 잡힌 말 먼저 살려야 한다. 상대방의 말에 가로막혀 놓지 못하면 그 수는 무효이며, 놓을 수 있을 때 까지 던진다.

또 한 가지는 ‘여기쌍육’이 있다. 흑과 백, 두 팀으로 나누는데 흑팀과 백팀 각각 15개씩을 앉은 자리의 왼쪽에 놓는다. 흑의 자리에서 볼 때 말이 놓여 진 곳을 ‘창고’라 부르며, 그곳은 ‘외집’이다. 반면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내집’이라고 부르며 그곳에서 논다.

내집에는 큰 원이 있고 1~6까지의 네모칸이 있다. 큰원을 ‘장군’이라 부르며 이곳에 놓을 수 있는 조건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같은 수가 나올 때이며 이때 말 하나를 큰 원에 놓는다. 장군은 큰 원 안에 말을 세 개까지 놓을 수 있다. 반면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다른 수, 4와 5가 나오면 이를 ‘나졸’이라 부르며 4와 5칸에 각각 말을 하나씩 놓는다. 나졸 칸에는 말을 두 개까지 놓을 수 있으나 두 개를 넣으면 더 이상 말을 놓을 수 없고 그 수는 무효이다.

장군 3개, 나졸 12개를 채우면 이번에는 반대로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 자리의 말을 창고로 빼어낸다. 장군과 나졸을 모두 먼저 뺀 쪽이 이기는 것이다. 이때 쌍육이 나오면 특혜가 있다. 점수를 따지는 방법은 장군이 20점, 나졸이 10점이며 상대방이 장군2개나 나졸3개가 남아있으면 합이 70점으로 이기는 것이다.

양반들이 주로 놀았다는 쌍육은 반드시 두 손을 공수하고 예를 갖추어 서로에게 절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절을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만들어 놀던 도구는 자손에게 대물림을 한다. 단순한 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절과 품위를 갖추고 있으며 그 자체가 학습이다.

뒷사람이 앞사람을 배우는 방법은 모름지기 심동(心同)이어야지 모동(貌同)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놀이라 할지라도 그 중심에 있는 정신의 실제를 놓지 않아야 새로운 상급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또 계승되어 가는 것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전통놀이의 뿌리를 찾아서」 우리전통놀이연구소·연기향토박물관/ 도서출판 성원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허경화 기자  hwa964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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