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북한산이나 도봉산에 오르는 사람이면 한 번쯤 보게 되는 광경이 있다. 평일 저녁, 나주 금성산에 오르는 사람 역시 대다수 눈으로 목격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삼각산, 월출산, 무등산, 태백산, 설악산 그리고 지리산 등 깊은 산속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언제든 보게 되는 광경, 바로 굿이다.

굿은 소리로 시작된다. 헐떡이는 가뿐 숨소리와 함께 ‘덩덩덩덩’ 장구소리, 선율의 고저에 따라 심금을 울리는 대금소리, 그 소리에 흐느적거리는 구경꾼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잔잔하고 가느다랗다.

무녀가 외치는 처절한 기원의 목소리는 바위를 그을리며 타올라가는 촛불이 대신하여 천지신명께 전달한다. 떡, 고기와 봉우리를 깎아낸 과일로 간소하게 차려진 굿상, 땅에는 좁쌀과 붉은 팥 등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온 산을 뒤 흔드는 요란한 소리, 울긋불긋한 무복들, 그 소리와 색채의 흥청거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여유 없이 절박한 분위기, 주위에 맴도는 신기(神氣), 본디 굿은 삶을 답답하게 만드는 맺힌 그 무엇을 시원스레 푸는 의례이다. 이러한 굿은 비단 산속만이 아니다. 동해의 푸른 바닷가, 남해의 청정바다와 서해의 널따란 갯벌에서 자주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신이나 무속을 종교로 보지 않는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토속종교인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읽는다는 이야기다. 전통적이든 아니든 굿은 꼭 망자의 극락왕생을 위해서만 벌이는 것은 아니다. 병든 사람을 낫게 하기 위하여 굿을 하고 집안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취업, 혼사, 진학을 위한 굿을 하고 농사가 잘되게 기원한다. 또 동네에 액운이 겹치지 않도록 기원하는 굿도 있다.

망자의 혼령을 위한 무당굿, 진도 씻김굿

씻김굿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진도로 달렸다. 현장 도착시간은 저녁 7시 30분경이었는데 으스스 하기도 하고 오싹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마을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벌써 모여 있었고 우리는 기다림 없이 바로 생생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두어 시간 쯤 지난 듯 보였다. 무녀의 얼굴은 땀범벅으로 물을 끼얹은 듯 했고 한 손엔 대나무에 한지를 오린 모양의 신과 접신할 때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 뭔가를 들고 있다. 그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었다.

전라도 지역의 무당은 대부분 ‘당골’이라고 부르는데 예로부터 그 사람들만 굿을 주도할 수 있었다. 진도도 예외는 아니어서 간단한 푸닥거리라면 모를까 정통 굿을 할 때는 집안 대대로 당골을 이어온 무당이 주도한다.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천도하는 진도 씻김굿, 1980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72호로 지정되었다. 이 굿은 천도제(薦度祭)에서 행하는 관욕(灌浴) 의식처럼 망자를 상징하는 신체를 만들어 놓고 망자가 이승에서 맺힌 원한이나 모든 것을 씻어주어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례행위이다.

진도 씻김굿은 망자의 시신 옆에서 직접 행하는 ‘곽머리 씻김굿’을 비롯하여 ‘대상 씻김굿, 소상 씻김굿, 날받이 씻김굿, 초분장 씻김굿’ 등이 있다. 또 물에 빠져죽은 망자의 넋을 건질 때 행하는 ‘건지기 씻김굿’이 있고 처녀총각으로 죽은 망자끼리 혼인을 할 때 행하는 ‘사혼 씻김굿’, 비석을 세우거나 집안의 경사가 있을 때 행하는 ‘영화 씻김굿’, 객사(客死)하여 고혼이 된 망자를 위하여 행하는 ‘혼맞이 씻김굿’등이 있다.

이들 씻김굿 중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씻김굿은 날받이 씻김굿이다. 굿의 순서를 보면 맨 먼저 안당이라 하여 성주상 앞에서 행하는데 부정을 물리고 신들에게 굿하는 목적을 고한다. 그 다음은 망자를 청하는 초가망석이라는 의식을 하고 천연두신을 모신다. 조상을 순서대로 청하여 모시는 선영굿, 그 다음이 씻김인데 말 그대로 망자의 넋을 상징적으로 깨끗하게 씻기는 굿이다.

굿 중간쯤 고풀이를 하는데 무명베에 일곱 매듭의 고를 만들어 무녀가 춤을 추며 그 고를 풀어준다. 망자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홀가분하게 저승가기를 비는 내용이다. 그 다음으로 길 닦음을 하는데 그 역시 망자의 저승천도를 비는 내용이다. 이 대목이 가장 슬프다. 훌쩍 거리며 대다수가 눈물을 흘렸다.

진도 씻김굿의 악기는 장구를 비롯하여 징, 북, 피리, 젓대, 해금, 아쟁, 가야금 등으로 구성된다. 춤 장단은 엇중모리, 흘림, 굿거리, 살풀이, 동살풀이, 자진모리, 자진굿거리, 중중모리 등이며 악사들이 합창을 하여 흥을 돋우기도 한다. 진도 씻김굿의 춤 음악 소리 등은 문학, 음악, 무용, 민속학 등의 분야에서 가치가 높다. 죽음을 맞이한 초상집에서 행해지는 절제되면서 단아한 춤사위와 아름다운 소리를 담은 음악 등은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남해안 별신굿

거제와 통영지역을 중심으로 해안마을과 도서지역에서 행하여지는 마을 굿. 1987년도에 ‘중요 무형문화제 제82-라’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세습무에 의해 별신굿, 오구새남굿, 도신굿 등이 행해지는데 대대로 특정 성씨들이 당골이 됐다. 예를 들면 정씨는 거제도, 이씨는 통영 욕지도 및 인근 섬지역, 김씨는 한산도를 중심으로 당골판을 주도한 것이다.

세습무는 일정한 지역의 마을을 자신의 독점 영역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을 당골판이라고 하는데 무당과 당골판이 사는 주민들 사이에는 일종의 계약이 성립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봄, 가을에 세습무에게 정해진 분량의 곡식을 주어야 하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무당은 필요할 때 그 마을 자체의 굿과 주민들의 개인적인 굿을 맡아서 해줄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당골판은 광복 이후 거제와 통영의 세력권이 합쳐지면서 무관(춤)이 통일되었다고 한다.

남해안 별신굿은 보통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열린다. 요즘은 2일 정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굿의 진행순서를 보면 첫 번째가 들맞이 당산 굿으로 마을에 도착한 일행이 걸궁을 하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이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도착한 것을 알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굿장모댁 부정굿, 굿에서 그 마을을 대표하는 제관(굿장모)집에 들러서 이 집의 부정을 씻는 절차이다. 세 번째는 산신제다. 마을의 굿장모와 이를 보조하는 마을 사람 1~2명이 당산에 올라가 마을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절차로 제물을 차려 제사를 모신 뒤 밤을 새운다. 다음에는 일월맞이라 하는 칠성굿을 한다.

묵은해를 잘 보냈으니 돌아오는 해도 잘 보내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원하는 굿이다. 다섯 번째로 골맥이 굿이다. 일월맞이가 끝나면 메구를 치며 삼한대를 앞세우고 바닷가의 용왕굿 장소로 내려온다. 사행용왕신에게 배의 안전과 만선의 풍어를 기원하는 굿이다. 이 때 마을의 각 가정에서는 조상상을 차린다. 다음은 부정굿으로 굿청의 부정을 씻고 제단을 정화하는 굿이다.

가망 할매에게 비와 바람을 막아주고 어업과 농사의 풍요를 달라고 비는 가망굿이 있고 제석신에게 재수를 기원하는 굿인 재석굿이 있다. 또 팔도서낭을 다 불러 모셔서 동네 평안과 자손들의 무사를 기원하는 굿인 서낭굿 등 여러 절차를 거치며 굿판을 벌인다. 굿 재차는(?) 모두 다른 순서로 이루어진다.

동해안 별신굿

본디 별신굿(別神-)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여 좋은 곳으로 보내 산 사람의 안녕을 도모하는 뜻의 굿으로, 특정한 사람만을 위하는 것이 아닌 마을 사람 전체를 위한 경우가 많다. 농업 어업 등 사업의 흥성을 기원하기도 하고, 장수 건강 화목 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경북 지방에서는 농어촌 지역에서 그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자연재해의 위협에 의해 피해를 많이 입는 어촌 지역에서 별신굿이 자주 열린다. 부락 단위의 동해안 별신굿은 풍어제의 성격을 지닌다. 죽은 사람을 위한 굿은 오우굿(오구굿)이라 한다.

동해의 별신굿은 ‘벨손’이라 불리기도 하며 매년 열리거나 몇 해마다 열리는 큰 축제로 알려져 있다. 동해안으로 고기잡이 나갔다가 죽은 이가 많아 오우굿을 자주하는데 조선시대 남효은(1454-1491)의 글 ‘추강냉화(秋江冷話)’에서도 “풍어와 부락민의 안녕을 위해서 연 3일 굿을 치렀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전통이 오래된 굿이다. 순서는 남해안 별신굿과 비슷하다.

굿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세계를 다룬다. 그렇기에 굿을 미신이라 치부해 버리면 의미가 없다. 굿이 지닌 의미가 무엇이고 굿을 통하여 인간들은 무엇을 얻고자 했으며 어떤 효과를 얻어 냈는지?

서양의 샤머니즘과도 흡사한 무격(巫覡)신앙은 신석기 시대부터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스스로의 나약한 부분들을 채우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으로 무(巫)를 찾아 위로받고자 한 것이었겠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