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사랑은/저만치 피어 있는 한 송이 풀꽃/이 애틋한 몸짓/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사랑은 가진 것 하나씩 잃어가는 일이다. - 「인연서설」중에서 -

사랑은 애틋한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면서, 가진 것 하나씩 잃어가는 일이다. 잃어버리면서 서로는 동화되어 닮아간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면 객관성을 잃게 된다. 오월의 거리에서, 대학 강단에서, 사회단체에서 오래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었던 시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객관성을 띄기 어렵다.

해님도 서산 넘어 고향 갑니다

문병란 시인은 민족주의 문학의 무대를 넓히면 지금까지 시 창작의 열정의 불을 지피고 있다.

문병란 시인은 1935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 서석초등학교를 다녔다. 동요나 글쓰기 지도를 하시던 문염구, 정용상, 여운교 선생님이 소년 문병란에게 문학에의 꿈을 심어주었다. 특히 작곡을 잘 하시던 정용상 선생님은 「고향 계신 어머니」라는 동요에 작곡을 해서 교지에 게재해주셨다. 이 곡은 나중에 문교부 검인정 교과서 가곡 편에 실리기도 했다.

간절한 생각은 고향 계신 어머니/눈물을 흘리면서 남쪽 하늘을/홀로 앉아 외로이 바라볼 때에/해님도 서산 넘어 고향 갑니다.//그칠 줄 모르는 어머니 생각/돌아서면 바라뵈는 먼 하늘을/홀로 서서 우러러 하염이 없고/어머니 얼굴 실은 달이 뜹니다. - 「고향 계신 어머니」-

소박한 동심으로 쓴 시이지만 훗날 시인으로서의 싹이 여기서 텄다. 시인의 시적 리듬에 대한 선험적 깨달음이 여기서 지배적으로 형성되었다. 황지우 시인은 그의 시를 ‘유행가’ 같다고 했다. 유행가는 중독성이 강하다.

대학에 가서 조선대학교 문학과 시 창작 지도교수였던 다형 김현승 시인의 지도와 영향을 받았다. 다형 김현승 시인은 소설가 박화성, 시조시인 조운, 시문학파 시인 박용철 다음을 이어 광주 전남이 배출한 탁월한 시인이었다.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적 바탕이 시 정신 속에 깃들어 있었지만, 고독의 시인, 가을의 시인으로 김기림에 이어 한국 문단 최고의 모더니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시인은 33권의 시집과 20여 권의 산문집을 간행했다.

지성과 감성 조율된 서정적 세련미

시인 송광은, 진헌성, 이성부, 임보, 조태일, 이은봉 소설가 문순태 등의 문학가들이 김현승 시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다형 김현승 시인의 제자 중 하나인 문병란 시인은 “김현승 시인의 탄생 100주기인 2013년을 맞으면서 제대로 된 김현승 문학관 하나 없는 광주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가로수(街路樹)」라는 시로 초회 추천을 받았고, 이어 졸업 후 순천고등학교 교사 시설 「밤의 호흡」, 「꽃밭」 등으로 추천이 완료됐다. 1963년이었다. 시인으로 데뷔한 후에 「꽃씨」, 「시간」, 「손」, 「기도」, 「조롱의 시」, 「나비-생물실 소묘」 등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지성으로 조율된 감성’, ‘언어파적 세련된 서정적 특징’ 등을 가진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의식의 내면을 탐구하면서 언어예술파적 생활 정서를 노래하는 서정시의 시대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1970년 10월 유신이 발표되고 문단에서도 자유실천문인협회가 결성되면서 유신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당시 문병란 시인이 순천고를 거쳐서 광주일고에서 교편을 잡다가 조선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이후였다.

부조리한 시대의 날카로운 발톱이 지식인들에게 덮쳐왔다. 시인은 가장 민감하게 시의 촉수를 그 시대 한복판으로 뻗쳤다. 양심의 소리를 외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적 요청을 냉철한 자기 성찰로 절제하면서 견인하는 시대 의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시인은 33권의 시집과 20여 권의 산문집을 간행했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자유․인권․민족․민주․통일의 민족의식을 기조로 참여적 저항의 민족시, 민중시의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쓴 작품들을 모아 <전라도 뻐꾸기>라는 시집으로 내려고 했으나 출판사의 거부로 실패하고 말았다. <문병란 시집>(71) 이후 <정당성>(73), <죽순 밭에서>(77), <호롱불의 역사>(78), <벼들의 속삭임>(1980. 4) 등이 발간되었다. 사회성과 예술성, 그리고 이 속에서 빛나는 진정성을 융합하려는 시들이었다. 그리고 전라도를 대표하는 향토성이 빛나는 시편들이었다.

<땅의 연가>(81, 판금), <새벽의 서>(83), <동소산의 머슴새(장편민족항일 시)>(84), <무등산(86)>, <양키여, 양키여(미국기행 시집)>(88) 등은 한시도 쉴 수 없었던 민주, 민족주의 시인의 가장 열정적인 저항의 시기에 쓰인 시편들이 묶인 시집들이다.

「직녀에게」, 「우화」, 「똥이 된 쌀노래」 등의 통일의 염원을 담은 시편들과, 1980년 5월 민중항쟁 이후의 「송가」, 「부활의 노래」, 「아직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무등산」, 「화염병 파편 뒹구는 거리에서 나는 운다」, 「동소산의 머슴새」 등을 화염병 파편 뒹구는 거리에서 써내려갔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끝까지 서정의 편철로 묶여진 시대정신의 시를 고집했다.

이별이 너무 길다/슬픔이 너무 길다/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버린/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냐 할 우리,/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가슴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직녀에게」-

슬픔은 끝나야 한다고 말했던 시인은 5․18 항쟁으로 구속되고 민주화운동 국가 유공자가 되었으나 아직 “시적 목표였던 민주화나 통일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나의 설 자리는 지금도 저항이고, 사회적 참여이다. 그 참여는 민족적 민중적 휴머니즘의 참여로 바뀐 것 외에 아직 나는 나의 깃발을 내려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언제나 민주 통일의 세상을 꿈꾸는 저항의 시인으로 언제든지 시로 사람 사는 곳을 꿈꾸는 곳에 달려간다.

나는 아직 내 시의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5월가」가 애국가였다면,「직녀에게」는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에게는 대중가요였다. 이후 쓰인 <직녀에게>(92), <불면의 연대>(94), <새벽의 차이코프스키>(97), <인연서설>(99) 등도 열렬한 저항의 시편들이었다.

1988년 조선대 민주화와 함께 복직 형식으로 모교에 복귀했다. 이때는 문학적 재정립 기간으로 삼고 내면적 성찰이나 자기 단속을 꾀하기도 했다. 200년 8월 정년 후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지도교수, 재단의 관선이사를 맡아 대학의 민주화에도 일정한 기여를 했다.

은퇴 이후의 노년기를 맞아 ‘서운 문학 연구소’를 차리고 문학동호인들이나 문학 만학도들을 만나면서 자기 정리의 시간을 갖으면서 낸 시집들이 연이어 발간되었다. <민들레타령>(06), <매화연풍>(09), <내게 길을 묻는 사랑이여>(09), <금요일의 노래>(10), <시인의 간>(11), <육필 시집 법성포 여자>등을 발간했다. 지금까지 모두 32권의 시집을 매년이다시피 발간해냈다.

호를 딴 서은문학연구소를 설립해 많은 문학 후배들과 문학 만학도들과 전국의 문학인들과 교류하는 사업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민족문학의 영토와 무대를 넓히다

시인은 광주 전남을 내내 지킨 향토 지킴이 시인이었지만 전국에까지 외연을 넓히고 광주의 이미지를 전국화했다. 1980년 5월을 노래하고 그 정신을 독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 강연과 시로써 알렸다. 그리고 일본 북한에가지 민족주의 시작품을 전파했다. 광주에서 잉태된 민족문학의 영토를 미래의 통일 조국에까지 넓히는 데 기여했다.

지난 2006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남북 문학 교류대회를 할 때 북한의 대표시인인 동기춘이 시인의 이름을 지명해 존경을 표시하고 「동소산의 머슴새」 한 대목을 낭독했던 일이 중앙 일간지에 보도될 정도였다. 그는 늘 “진정한 민족적 문학가는 그 독자가 남북 모두를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녀에게」, 「꽃씨」, 「아버지의 귀로」, 「식민지의 국어시간」 등의 작품들이 중고등학교 문학교재나 윤리 교재에 수록되었다.

시인은 <저 미치게 푸른 하늘>(79), <현장문학론>, <민족문학 강좌>, <문병란 시 연구>, <어둠속에 던진 돌멩이 하나>, <새벽을 부르는 목소리>, <영원한 인간상> 등 20여 권의 산문집을 간행하면서 문학과 시대와 삶에 대해 청년들과 이야기했다. 시인은 청년 정신의 열정을 가지고 있고, 열정적인 청년들의 문학적 우상이기도 하다.

서은문학연구소에는 지금도 많은 문학 후배들과 문학 만학도들이 배움을 청하러 온다. 이곳에서 시인은 서울 대구 부산 등 타 지역과의 문학적 연대와 교류를 위한 사업들을 활발하게 펼쳐나가고 있다. 그것은 지난날 정치나 경제가 지역감정을 만들지만 문학만큼은 그것을 해소할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 교류와 통일 문학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서운문학연구소에서의 문학적 연찬을 계속될 것”이라고 시인은 주장한다.

시인은 전남문학상(1979), 요상문학상(1985), 금호예술상(1996), 화순문학상(1996), 광주예술상(2000), 한림문학상(2001) 박인환 시문학상(2009), 문예시대 문학상(2009) 낙동강 문학상(2010) 기타 조대문학상, 향토문학상,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인은 시를 창작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문학적 진지성이 있는 시, 현실에 관심을 갖되 그것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 입장에서 문학이 다른 것의 장식이 되지 않도록 전문성을 연마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삶과 동시대를 사랑하자.”

대동문화72호 [2012 9.10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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