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가 나무를 깔보면 나무가 오히려 목수를 때리고 상처를 줍니다. 나무와 소통하고 나무를 배려해야 합니다. 생명 있는 사람처럼 대해야 그 나무가 좋은 작품을 낳아 줍니다.”

좋은 소목(小木) 작품은 나무가 주는 것이지 인간의 기교로 명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인 소병진(蘇秉辰) 명장의 나무를 대하는 태도다.

전주장의 전통을 100년이 지난 뒤 복원

전주의 자존심 담긴 장롱 복원하다

소병진 소목장(68)이 복원한 대표적인 작품은 ‘전주장(全州欌)’이다. 전주장은 우선 100년 이상 된 고사목의 무늬가 좋은 목재(용목)를 골라 15년에서 20년 이상 자연 상태에서 건조시킨다. 느티나무, 먹감나무, 참죽나무 등을 쓴다. 그리고 가구로 제작하는 데만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장롱은 집안 살림살이의 무게중심을 잡는 공간 미학 작품이다. 신접살림을 날 때 대표적인 혼수다. 집안의 신분과 체통을 보증해주던 가구였다. 양반 집안에서는 혼사가 있기 3년 전부터 출장 소목수를 불러 묵어가게 하면서 장롱을 맞췄다.

전주장은 작으면서 결구가 충실하고 안정된 장롱이다. 2층장의 상단은 여닫이, 하단은 앞닫이 형태로, 상단 내부에 작은 서랍을 내는 2중 구조다. 천판과 옆널은 소나무, 문판은 참죽나무로 울거미를 짜고 괴목의 뿌리 부분을 켜서 끼우며 나무의 결을 잘 살려내 조각하는 특징이 있다.

전주장의 대표 작품은 ‘전주비선장’인데 8개의 다리를 가진 주꾸미처럼 생긴 장석을 5매 붙인다. 이것은 이 장롱으로 집안을 장식해 5대에 걸쳐 40명의 자손을 얻으라는 자손번창, 부귀다생의 의미다. 박쥐 경첩도 박쥐의 집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집성촌을 이뤄 살아가는 가계를 의미한다. 길상화 또는 불로초 들쇠나 장식은 장수를 상징한다.

서랍의 겉면은 다른 부재를 써서 아(亞)자 상감으로 제작하는 데 이것은 인체로 보면 동맥과 정맥의 혈선이다. 나무가 건조되면서 어떤 부재는 빨리 마르고 수축하며 어떤 부재는 더디 마르며 견고해지는 성질을 역이용해 결구를 더 충실하게 한다. 위는 남편이 이용하는 공간이고 아래는 아내가 이용하는 장이다. 위에는 패물, 족보, 문서 등을 보관하고 아래는 속치마 등을 넣어놓는다. 위의 장롱 열쇠가 아래를 열 수 없고, 아래 장롱 열쇠로 위를 열 수 없다. 메시지와 스토리가 담긴 전주장을 100여년 만에 다시 복원한 소병진 소목장은 이 제작 방법을 상표 등록, 디자인 등록을 하고 특허까지 냈다.

소병진 소목장은 완주군 용진면 용흥리 소씨 가문의 집성촌인 목수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까운 전주는 전라도 행정 중심으로 선비들과 부호들이 많이 살아 자연스럽게 장롱의 수요가 많았다. 충청도에서도 장을 맞춰갔다. 완주 봉동, 용진 등에 100여 명의 목수들이 살고 있었다.

소병진 소목장의 고향인 용흥리에는 당시 15명 정도의 목수가 있었다. 증조부는 선군감 가감역(토목 대목수)을 지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목수였다. 대목수보다는 장롱과 궤함 등을 제작하는 소목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8촌 형의 소개로 ‘전주 중앙가구’에 들어갔다. 천부적이었다. 남들 10년 걸리는 소목 기술자를 3년 정도 배워 터득했다.

스무 살 때 서울의 동일 가구 공방으로 들어갔다. 당시 홍익가구 등과 동일 가구는 한국 최고의 장롱 공장이었다. 국내반, 수출반으로 나뉘어 일했는데 가구 기술자만 500명 정도 일했다. 스물세 살 때인사동에 들러 전시된 가구를 구경하는데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150년 된 ‘전주 태극 이층장’을 보게 됐다. 고향 마을인 전주 용진에서 만들었다는 그 전주장의 멋스러움에 흠뻑 빠졌다. 가구 기술자가 보기에 전주장은 명품 전통 가구였다. 기필코 ‘전주장’을 복원하겠다는 소원을 세웠다. 그리고 돈이 생기는 족족 가구를 조각할 수 있는 나무를 사서 고향 집에 두고 말려두기 시작했다.

전주장을 복원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전주장을 가진 사람들을 찾으면 부탁해 사진을 찍고 치수를 재고, 재료와 형태, 장석 문양을 일일이 기록하고 설계했다.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 소병진

군대를 다녀온 이후 27살 때에는 전주에 홍익가구 공예사를 열어 가구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전주장’을 연구했다. 전주 버선장, 전주 이층장, 전주 머릿장 등 다양한 전주장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1971년 국제 기능 올림픽 전북대회에서 가구 제작으로 은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대한민국 명장 가구 제작 1호로 지정됐다.

2004년에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을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했다. 2012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소목장(전주장)으로 지정되면서 전주장 재현이라는 소원이 이뤄졌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전주장이 복원되어 일반에 선보여지게 됐다.

2014년 9월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小木匠) 보유자가 됐다. 긍재(亘齋)라는 호처럼 지극한 노력을 통해 경지를 터득한 장인이 되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조선한식가구(전주장)로 지정되기도 했던 소병진 소목장은 1대 고(故) 강일봉, 2대 김석환, 3대 최규환, 4대 이해민 선생 등에 이어 5대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석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가구디자인 전공 겸임 교수(1996년~)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 객원교수(2011년~),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부이사장(2013년~)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전북 완주군 용진읍의 운곡리의 전주장 전수관에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전북 잠업시험장이었던 터를 2013년부터 전수관으로 활용해 관광자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간절함이 있어야 되고 오래 지속하는 끈기가 있어야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바르고 정직해야 바르고 정직한 소가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소병진 소목장은 인성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2016년에는 우석대학교 교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 한식가구의 구조와 형태를 전주장의 사례’를 연구했다. 박물관이나 교육관을 만들어 전주장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보존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소목장(전주장)의 유네스코 등재도 준비하고 있다.

전통 목가구를 만드는 전통 도구들

4차 산업혁명 시대 각광받는 직업

“소목은 손으로 하는 것이고 로봇이 짜맞춤 가구를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의 가장 섬세한 손감각과 공간과 시간 인식 능력 예술적 감성으로 가구를 짭니다. 그래서 미래 직업으로는 소목과 같은 직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수관 한쪽 벽면을 차지한 소목장 도구들의 전시 모습을 보면 소병진 소목장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전통 짜맞춤 가구를 만들기 위한 스스로 연구하고 개발한 전통 도구들의 도열이다. 거기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고 쓰여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소목 장인들을 키우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소목장은 오늘도 나무를 어루만진다. 나무와 소병진 명장의 따뜻한 교감이 눈에 선하다.

<대동문화 102호. 2017년 9월 - 10월>

백승현 기자  poru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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