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시계 수리 용문당 신영태 장인

결혼 40년차. 결혼식 때부터 차고 다녔던 예물 시계가 고장 났다. 수리를 맡겼더니 시계가 스위스로 날아갔다 날아왔는데 6개월 만이었다. 120만원의 수리비 청구서와 함께 집까지 배달이 됐다. 일평생 스위스에 가보지 못한 어떤 지인이 들려준 명품 예물 시계 수리 이야기다. 예물시계가 지금도 유효한 결혼의 상징이라서 그렇게 비싼 대가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입학과 졸업, 약혼과 결혼, 이사나 예식의 특별한 선물로 귀하게 대접받던 것이 시계다. 하지만 요즘은 흔해져서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졌다. 서랍 속에도 시간이 멈춰버린 옛날 손목시계가 여럿 있다. 버리고 싶은 마음과 거기 깃든 추억의 명도와 채도 사이에서 잊힌 손목시계들. 시계밥을 줘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 2개를 들고 광주 동구 장동 교차로 부근 시계 수리점 ‘용문당’에 갔다. 주인인 신영태(80) 씨와 부인인 이순희(74) 씨가 함께 있었다.

50년 시계 수리 용문당 신영태 장인

50년 시간을 견딘 고집스런 시계 사랑

가게는 전체 3평으로 작업대 손님이 기다리는 의자 2개 외에는 빽빽하게 벽시계, 탁상시계, 손목시계들이 채워진 시계의 성채다. 중고 시계가 2,000개 새 시계가 3,000개다. 가게에서 시계를 고치고 새로운 시계를 팔기도 한다. 액자에 담긴 용문당 시계점의 허가증을 보니 최초 허가 연도가 1965년이다. 전남 광주 동구 장동 102-2번지가 가게 주소였다. 이 때는 고물영업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고물상 영업 허가증으로 기록됐다.

50년 시계 수리 용문당 신영태 장인

신영태 씨는 줄무늬 와이셔츠에 양복바지의 말쑥한 차림으로 손님을 맞았다. 능숙하게 시계를 열고 외알안경(기스미)을 안경 위에 쓴 채 시계의 내장을 들여다본다.

수리는 방수 방진 역할을 하는 고무 소재들을 교환해야 하고 기계 시계의 무브먼트 하나하나를 분해하고 세척해야 한다. 그리고 부품의 보충, 조립, 테스트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명품 시계 제조사들은 자체 서비스망을 통한 수리 판매 체계가 세계화되어 있다. 그러나 명품 시계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계들은 이런 시계 수리점에서 약을 갈고 간단한 수리를 거쳐 새 생명을 얻는다.

시계는 반지와 함께 전당포에서 돈을 빌어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물건이었고, 장물의 대표이기도 했다. 시계점의 관할 관청인 광주경찰서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장물 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모르고 장물을 샀다가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손목시계 속에는 90개에서 150개의 작은 부품들이 들어 있다. 태엽, 톱니바퀴, 탈진바퀴와 앵커, 탈진기, 초분시침들이 말 그대로 톱니바퀴처럼 제 동작을 제 시각에 맡아 한다. 신영태 씨는 52년 동안을 그 톱니바퀴처럼 자기 자리를 지켰다.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시계들을 파고 고치고 팔고 하는 동안 ‘경험학’이 쌓였다.

시계 수리는 부품이 많은 것이 그 가게의 실력인데 그 점에서 많은 시계를 가진 용문당이 유리했다. 전국에서 시계 수리 요청이 들어온다. 시간이 키우고 시간이 보증해준 시계 수리의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영태 씨는 지금의 동구 금남로 5가 55번지에서 났다. 6남 1녀의 외아들로 커서 수창초를 다녔다. 무선통신으로 영어 공부를 많이 한 덕에 지금도 외제 시계 이름과 부품 이름을 원어로 내리꿴다. 젊어서는 금성여객 여수 주재사원으로도 근무했다.

광주일고 앞 옛 서중학교 앞에서 시계점을 운영하던 친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가게를 인수했다. 가게의 기술자까지 인수를 받았지만 주인이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65년인 28살 때부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꼼꼼하고 차분하며 집중력이 있었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돼야

50년 시계 수리 용문당 신영태 장인

1968년 31살 때 결혼해 1남 4녀를 두게 되었다. 5번 정도 광주 동구 일대에서 가게를 옮겨 다녔다. 유리, 벨트 배터리 등 부속품 교환, 윤활유 주입, 방수 유지 등의 보관 방법 등을 공부하고 처리해야 한다. 친절하고 눈속임을 하지 않고 절대 수리 가격이나 판매 가격을 속이지 않는 신용을 지켰다.

부속을 교환하면 계기판 뒤쪽에 수리 날짜를 적어놓는다. 수리하는 중에 부품을 바꿔버리거나 중고 부품으로 수리하는 악덕 수리업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수리 의뢰자들 때문이다. “이것 보시오. 작년에 약을 갈았지 않소!”라고 수리 보증 일자를 기록해 증거 삼는 셈이다.

중고 시계를 부품 교환용으로 사기도 한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롤렉스, 론진, 라도, 브로바, 오메가, 티쏘, 세이코 등의 브랜드 시계가 유행했다. 현대 명품 브랜드로 불가리, 티파니, 해리 윈스턴, 디오르, 루이 비통, 몽블랑, 캘빈 클라인, 에르메스가 유명하게 됐다. 한국 제품으로 오리엔트, 로렌스, 로만손이 명맥을 잇고 있다. 지금은 명품 시계의 무브먼트와 대부분의 부품은 수입해서 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명품 시계라도 고칠 수 있다.

1980년 5•18 때가 가장 기억난다고 했다. 항쟁의 현장이었던 구 도청 주변의 가게들은 트라우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생목숨이 죽어나가는 현장을 목도해야만 했다. 총알이 가게 안으로 날아들었다. 진열장에 있던 값나가는 손목시계들만 서석동 집으로 옮기고 항쟁 기간 동안 가게 문을 닫았다. 그 후로도 1년 동안은 “일수 내서 쌀 팔아 먹었던” 힘든 시절을 견뎌야 했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 순간순간을 잘 살아야 좋은 추억이 만들어지지. 시계는 시간과 추억을 담고 있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새것을 좋아해서 금방 싫증을 내.”

추억도 가끔 고장이 난다. 6시 일이 끝나면 지인들과 함께 아내가 가져다 준 안주를 놓고 막걸리를 마시던 일도 작년부터 끝이 났다. 뇌경색으로 병원에 다녀온 뒤부터는 금주 생활이다. 지금은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요일만 쉬는데 2백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난다.

“추억이 있는 시계는 가격이 무한대야. 아무리 값싸도 추억이 담긴 시계는 값어치가 무한대야. 보물과도 같지.” 2개 손목시계 수리 가격이 1만 원이다. 다른 시계 수리점에서 애를 먹다가 손쉽고 값싸게 고치는 ‘용문당’ 신영태 장인을 만나니 흡족하다. 선물 받은 때가 생각난다. 추억의 초침이 살아났다.

광주 동구 장동로 2 용문당 062-222-9645

<대동문화 103호. 2017. 11~12월>

백승현 기자  porum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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