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 동화면 남평리에 자리한 ‘산들래’는 요즘 ‘눈코 뜰 새’가 없다. 김장철을 맞아 주문이 폭주하기 때문이다. ‘산들래’는 김순예·백미선 모녀가 꾸려가는 전통식품가공 회사다. 회사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어머니와 딸, 그리고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을 사서 회사를 꾸려가기 때문이다. 일하는 사람을 상시 근무하는 체제로 꾸려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날 오전에 절이고 오후에 비벼서 당일 보내주는데 주문이란 게 언제 얼마만큼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농외소득의 일환으로 2010년에 ‘산들래’라는 브랜드를 달고 시작한 지 올해로 4년째. 김치를 주품목으로 하여 저염식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엄마의 손맛과 정성, 그리고 진심이 담긴 맛

2010년 가을, 백양산 단풍 축제 때 ‘엄마 손맛 그대로’라는 전략으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선을 보인 ‘산들래’ 김치와 된장·고추장은 속된 말로 대박을 쳤다. 평생 거래를 제안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된장·고추장은 미국으로 수출도 했다. 된장·고추장 모두 옛날 방식 그대로 담갔으나 산들래만의 비법이 있다면 저염식으로 여기에 마늘과 양파 등을 갈아 숙성시키는 것만 추가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소문이 바람을 타고 전해지듯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산들래’는 창업 4년 차가 아닌 오랜 연륜과 중소기업 정도의 규모를 가진 회사로 느껴진다. 직접 공장으로 찾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전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데 4년여의 경험을 살려 이제는 김치도 지역의 입맛에 맞게, 또 개인별 취향에 따라 젓갈의 사용량과 종류, 고추의 매운맛 정도를 분류하여 9가지 맛으로 빗어내고 있다. 깔끔하고 담백한 젓갈을 좋아하는 서울식과 향이 진한 젓갈을 좋아하는 전라도식, 그리고 보통의 맛을 내는 보통식이 그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 가장 온기가 느껴지는 식탁은 아마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과 식탁일 것이다. 산들래가 창립한 지 4년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실 있는 회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대대로 이어오던 한국 고유의 어머니 손맛을 살린 정성과 진심 때문일 것이다.

비법은 없다. 친정 어머니처럼 한다

김순예(64) 씨는 전형적인 한국 여성 농업인이다. 지금도 그녀는 콩과 깨, 고추, 마늘 농사를 지으면서 ‘산들래’를 꾸려가고 있다. 농가에서 태어나 농부에게 시집을 왔고 지금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자녀들을 키워왔다. 그런데 그녀가 소위 식품 가공 회사라는 ‘판’을 벌인 것이다. 그것도 육십이 다 되어서….

“내가 담근 김치를 먹어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해요. 계를 해도 계꾼들이 맛있다고, 좀 담아달라고 하면 그냥 말 수가 없어서 담가주고, 담가주고 했는데 김치 담그는 것이 한 폭 담그나 열 폭 담그나 힘들기는 매한가지거든요. 이왕 고생할 것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장성군에서 농외 사업으로 권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도 해보라고 하니까 겁 없이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왔죠.”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다. 비법이 뭐냐고. 그러나 그녀는 딱히 말해줄 것이 없다. 그냥 친정어머니가 하던 식대로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저희 친정이 대농가였어요. 제가 8남매 중 맏이였는데 아무래도 농사를 많이 짓다보니까 일꾼들도 많고 늘 사람들이 북적거렸죠. 어머니가 그 많은 농군들을 뒷바라지 하니까 자연 큰딸인 저도 본 것은 많죠. 친정어머니 솜씨가 좋았어요. 김장철이면, 지금은 실고추를 썰지 않지만 그때는 실고추를 꼭 넣었거든요. 사람들이 엄마가 썰어놓은 실고추를 보고 다들 한마디씩 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썰 수 있냐고.”

장성군 삼계면에서 8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김순예 씨는 큰살림을 이끌어가던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음식 만드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 시절 보통의 여인네들처럼 혼기가 차서 장성군 동화면 남평리로 시집을 왔고 논밭 일구면서 자식 낳아 키우는, 평범한 생활을 하였다.

그녀는 친정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동네에서 솜씨 좋은 아낙이었다. 그렇다고 그 솜씨로 장사를 해볼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자녀(5녀 1남) 뒷바라지에 농사일하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농사란 휴일이 따로 없다. 하루 8시간이라는 정규 근로 시간도 없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지고도 한참을 지난 후에야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농부의 삶이다. 그런 고된 노동 속에서도 가족들의 밥상은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친정어머니가 하던 대로 고추장, 된장, 간장, 젓갈을 담고 그것으로 맛을 냈다.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게 재료예요. 아무리 손맛이 좋다고 해도 원재료가 좋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가 없어요. 지금도 저는 소금을 미리미리 사놓고 3년 이상 간수를 빼서 사용합니다. 젓갈도 간수를 잘 뺀 소금을 담그죠. 김치 맛은 젓갈이 좌우하거든요.”

산들래만의 레시피 개발로 맛을 지배하다

김순예 씨는 주위의 권유로 판을 벌이긴 했지만 정작 가공 장비를 갖춘 건물이 지어지자 덜컥 겁이 났다. 이제껏 농사만 지어왔지 그것을 가지고 직접 장에 나가 팔아본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광주에 살고 있는 큰딸 백미선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당시 큰딸은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근무를 하다 잠시 휴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어깨가 아파서 수술 날까지 잡아놓았는데 엄마가 이거 같이 하자고 하니까 어떻게 하겠어요. 당장 누군가는 도와야 하잖아요.”

처음 1년은 어머니와 갈등도 많았다. 홍보 전략과 맛을 내는 방법에서 오는 갈등을 비롯하여 무엇이든 대량으로 구입해야 했기에 경제적인 압박도 심하게 받았다. 어머니는 입소문만으로도 충분히 ‘산들래’를 꾸려갈 수 있다고 하고 그녀는 입소문만으로는 운영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산들래’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인터넷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고객들의 반응에 일일이 리플을 달고 답변을 해주는 것은 그녀의 몫이다.

엄마에게는 레시피가 없다 보니 김치를 담글 때마다 새로운 비법을 배우는 것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녀는 산들래만의 레시피를 체계화시키고자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음식에 대한 과학적, 합리적인 지식을 알아야겠기에 학술 세미나나 학회, 명인들을 찾아다나면서 강의를 들었다.

“그때 알았어요. 엄마는 명인이라는 타이틀은 없지만, 명인들처럼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하는 방법이 엄마와 같은 거예요. 엄마와 갈등을 겪었던 부분을 다 이해할 수 있었죠. 이제는 엄마의 방법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우리만의 레시피로 정리하고 있어요.”

백미선 씨가 산들래에서 김치를 버무린 지 4년. 이제야 어머니는 그녀에게 ‘이제 비비는 것은 제법 한다.’라고 할 정도로 깐깐하게 자신의 비법을 전수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아직도 어머니로부터 혼나는 것이 있는데 재료를 보는 눈이다.

“엄마가 시장에 갈 때 항상 같이 가요. 물건을 고르는 엄마의 감은 제가 따라갈 수 없어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그랬듯, 그리고 우리 엄마가 그랬듯 저도, 그저 내 가족이 먹는 김치를 담그듯 정직하게 만들 뿐입니다.”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정명혜 남부대 언어치료청각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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